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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예뻐지고 싶은 건 알겠지만

바람아님 2015. 6. 10. 09:12

(출처-조선일보 2015.06.10 팀 알퍼·칼럼니스트)


	팀 알퍼·칼럼니스트 사진
팀 알퍼·칼럼니스트
최근 지하철역 화장실을 이용해본 적이 있는가. 
보통 지하철역의 여자 화장실은 깜짝 놀랄 만큼 줄이 길다(잘못 설계된 화장실 때문에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위로를). 그런데 요즘엔 남자 화장실도 그만큼 줄이 긴 경우가 있다.

화장실의 기본적인 기능, 즉 용변을 보고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가는 남자들은 늘지 않았다. 
그럼 뭘 하러 화장실에 가느냐고? 거울을 보러 간다. 지하철역 남자 화장실에 가면 어디서나 거울 앞에 
줄 서 있는 한 무더기의 남자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거울 앞에서 도무지 어떻게 한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한 헤어스타일을 정성스럽게 매만지고 있다. 
그 남자들이 만들어낸 인(人)의 장막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다. 
솔직히 난 그들이 정확히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5분간 세심하게 머리를 매만졌는데도 뭐가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일사일언] 예뻐지고 싶은 건 알겠지만
요즘 한국에서 남자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예뻐지고 있다. 눈에는 서클 렌즈를 낀 뒤 

아이라이너를 그리고, 머리엔 왁스를, 얼굴엔 

BB크림과 스킨 토너를 바른다. 

알록달록한 문신을 새긴 남자가 클러치백을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이 모든 것을 갖추지 

못했다면 당신은 패션 감각 있는 남자가 될 수 

없다. 그런 '패셔니스타' 남성들이 민낯에 

늘어진 옷을 입고 다니는 날 보면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저분한 원시인 하나가 타임머신을 타고 2015년에 툭 떨어진 것처럼 바라볼 것 같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기를. '꼰대' 같은 불평을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남자들이 예쁘게 보이는 데 불만이 없다. 대부분의 생물은 수컷이 암컷보다 화려하게 치장한다. 

수컷들은 짝짓기를 할 때 더 많은 암컷을 끌어들이기 위해 몇 시간씩 몸단장을 한다. 

치장에 신경 쓰는 남자들 역시 그런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하철역 화장실 말고 다른 곳에서 치장하는 걸 권하고 싶다. 

그들이 화장실을 점령하고 있는 바람에 나 같은 사람들은 오줌보가 터져나갈 것 같은데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