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北韓消息

[설왕설래] 압록강

바람아님 2016. 1. 12. 00:25
세계일보 2016-1-10

압록(鴨綠). 강의 물빛이 오리머리 빛처럼 푸르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서에는 패수(浿水), 염난수(鹽難水), 마자수(馬?水), 청수(靑水)라고 했다. 부여에서는 엄리대수(奄利大水), 고구려에서는 청하(靑河)로도 불렀다. 강산의 이름치고 역사성을 갖지 않는 이름도 있을까. ‘패수’는 특히 그렇다. 우리 고대사와 얽힌 이름이다. 패수의 위치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도 이어진다. 요동(遼東)의 요양을 흐르는 헌우낙수(?芋?水)가 패수라고 하고 청천강, 대동강을 패수라고 하기도 한다. 연암 박지원은 이런 말을 했다. “동이족이 동쪽으로 옮겨 앉았으므로, 머무르는 곳마다 평양이라고 했다. 지금 대동강의 평양은 그중 하나다. 패수 역시 마찬가지다.”

 


압록강 북편에는 우리 고대 유적이 널려 있다. 집안(集案·지안). 고구려 고분이 빽빽이 들어선 곳이다. 광개토대왕비도 그곳에 있다. 고구려의 국내성이 있던 곳이라고도 한다. 집안을 가로지르는 압록강 지류 끝머리에는 환도산성이 우뚝 서 있다.

압록강변 단둥의 박작성(泊灼城). 머물 박(泊), 밝을 작(灼). 박 자에는 물결이라는 뜻도 있다. 성에서 보면 햇빛을 반사하는 강물이 너무 아름다워 붙인 이름일까. 이 성에서는 성주 소부손(所夫孫)이 1만 군사를 이끌고 당 태종 이세민의 군대에 맞섰다. 중국은 성의 이름을 바꿨다. 지금은 호산산성(虎山山城)이라고 부른다. 1990년 명나라식 성을 쌓고 “만리장성의 동단”이라고 주장했다. “역사를 바꾸겠다”는 동북공정이 진행 중이니 우리 선조의 유적 어느 것 하나 온전할 수 있을까.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 실험 때다. 박작성을 지나 북·중 접경으로 갔다. 북한 땅은 바지자락 걷어 개울 하나 건너면 닿는 곳에 있었다. 강이 물줄기를 바꾸니 국경선은 중국 땅에 붙었다. 소총을 메고 나타난 앳된 북한 사병. “핵 실험 소식 들었느냐”고 물었다. 유난히 까만 얼굴에 야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들었시요.” 심드렁한 모습이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핵 실험 파장이 또 압록강에 밀려든다. 중국은 관광객을 북한 쪽에 접근시키지 말라고 했다. 북·중 접경으로 달려간 외국 특파원에게는 자진철수 권고를 내렸다고 한다. 중국군 2000명을 접경지역에 추가 투입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살풍경이 추운 강을 휘감는다. 핵 무장을 한다고 안전할까. 수풍댐 북한쪽 반은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시커먼 댐’으로 남아 있다. 심드렁한 병사의 낯빛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던가.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