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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세이] 무한한 미래 영토 '가상세계'

바람아님 2017. 1. 27. 00:10
세계일보 2017.01.27 00:02

내일은 설날이다. 어린 시절 설날의 색깔은 알록달록했다. 때때옷과 풍선, 발로 차던 제기는 오색으로 물들여 있었다. 집집마다 돌며 세배하고 얻어먹던 떡국도 달걀지단과 김 등으로 제각기 하얗고 노랗고 까만 다채로운 색깔의 고명으로 장식되었다. 무지개 꿈에 파묻혔던 명절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꿈을 안고 떠났던 고향을, 그래도 설날이 되면 다시 찾았다. 예쁜 빛깔의 때때옷도, 풍선도, 제기도, 집집이 차려내던 떡국도 차츰 사라져갔다. 10여 년 전에는 아예 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도는 대신 여유 시간에는 초등생이던 아들과 PC방을 찾았다. 컴퓨터가 어설프게 그려놓은 가상의 환경에서 게임을 즐겼다. 얼마 뒤 국토해양부의 국토정보정책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공간정보정책이 주요업무 중의 하나였다. 현실의 시설물과 자연을 위치를 기반으로 3차원의 입체 이미지로 정밀하게 시각화하면 현실과 같은 느낌을 주는 가상환경의 창출이 가능할 것 같았다. 상상의 공간인 신세계, 가상세계에 대한 설레는 기대가 시작되었다.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시간의 역사’의 저자로 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몸이 굳은 채 휠체어에 의지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자유롭다. 우주의 비밀에 한 발짝 다가서려는 그의 머리에는 상상의 광활한 우주 공간이 펼쳐져 왔을 것이다. 불편한 현실세계를 벗어나 그만의 가상세계에서 무한한 사색을 넘나들며 한편으로 즐거움도 쌓아갔을 것이다.

구글은 단어 검색으로 출발했다. 7년 뒤인 2005년에 시각화된 이미지를 제공하는 구글어스를 출범했다. 지구뿐만 아니라 은하계까지 360도로 보여주기 위해 3차원 이미지와 정보를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해왔다. 아울러 구글이 확보한 정보를 구글어스에 탑재해나갔다. 전 세계의 정보를 한눈에 체계적으로 보고 편리하게 이용하기에는 이러한 시각화된 플랫폼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VR(가상현실)용 구글어스가 공개됐다. 가상세계가 더욱 성큼 다가왔음을 보여주었다. 3차원으로 묘사된 세계의 주요 도시, 문화재, 자연물이 실감나게 눈앞에 전개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시공간을 넘어 융합하고 활용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게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무궁무진한 상상의 경제활동들이 가상세계에서 창조되고 거래될 수 있다. 새로운 영토, 새로운 경제시장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6~7년 전부터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나름 준비를 해왔다. 둥근 지구본 하나에 집중하여 핵심지역에 3차원 이미지를 구축하고 운영을 전담할 민간기구도 설립했다. 브이월드(Virtual World)였다. 구글어스도 3차원 구축 기술이 초기단계였기 때문에 가상세계 글로벌 플랫폼으로 경쟁의 가능성이 있었다. 5년 정도면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법정기관으로 전환된 전담기구는 둔감해졌다. 예산도 축소되었다. 그동안 나름 많은 다른 기여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플랫폼으로서의 기대는 점점 어려워져가는 듯하다.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신중한 태도가 필요했던 지도 개방에 대한 입장도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아쉬운 대로 이 시점에서 분명한 방향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트럼프는 그들의 국경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상세계의 영토는 주인도 국경도 없다. 우리나라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12해리의 영해, 대기권까지의 영공 그리고 일부 선점한 무주공산의 남극이라면, 제5의 영토는 무한한 가상세계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상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알록달록한 상상을 가지고.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