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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지하철 무정차, 도로 차단..베이징 리허설 열병식에 準계엄 돌입

바람아님 2019. 9. 9. 08:27

중앙일보 2019.09.08. 15:42

 

9만 명 동원 심야 열병식 첫 리허설..천안문 완벽 차단
군인 버스에 시민 환호..지하철 무정차에도 항의 없어
호텔·클럽 등 영업 중단, 우편 검열..전시 금주령 발령
7일 밤 베이징 천안문 앞 창안가를 중국 인민해방군 삼군의장대가 행진하고 있다. [CC-TV 캡처]
7일 밤 베이징 천안문 앞 창안가를 중국 인민해방군 여군부대가 행진하고 있다. [CC-TV 캡처]
7일 밤 천안문 광장에서 펼쳐진 국경절 기념 행사 리허설에서 시민들이 축하 공연을 연습하고 있다. [CC-TV 캡처]
7일 오후 베이징 융안리 인근에서 국경절 열병식 리허설에 참가하는 군인을 태운 버스가 지나자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신경진 기자
“어 내려야 하는데.”
7일 오후 7시 반경 궈마오(國貿) 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베이징 천안문 인근 왕푸징(王府井) 역을 향했다. 열차가 융안리(永安里)역을 지나자 좌우 출입문 위로 다음 정차역을 표시하는 패널이 갑자기 모두 점멸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다음 정차 역인 젠궈먼(建國門) 역과둥단(東單), 왕푸징, 천안문동·서, 시단(西單) 역을 건너뛴 채 푸싱먼(復興門) 역이 표기됐다. 아무 안내도 없었다. 완장을 찬 보안 요원이 “다음 정차역은 푸싱먼”이라며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열차는 6개 역을 순간 이동하 듯 텅 빈 역사를 무정차 통과했다. 목적지를 놓친 승객들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항의도 소란도 전혀 없었다. 푸싱먼 역에 열차가 멈추자 마침 플랫폼에 정차해 있던 반대 방향 열차로 우르르 뛰어가는 모습만 목격됐다.          

융안리역으로 돌아와 창안가와 이어진 젠궈먼네이다제(建國門內大街) 출구로 나왔다. 교통경찰이 천안문 방향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며 일반 차량과 시민의 이동을 막았다. 군복을 입은 인민해방군 사병이 4~5m 간격으로 경비를 섰다. 이곳 역시 갑작스러운 통제에 항의하는 시민은 전혀 없었다. 곧 궈마오 방향에서 지프와 열병식 참가 사병을 태운 버스가 나타났다. 시민들은 길가에서 군인을 스마트폰으로 찍기 시작했다. 붉은 신호등에 속도를 줄이던 한 버스가 시민을 향해 경적을 울렸다. 베이징 시민들은 손뼉 치며 환호했다.          

도보 부대에 이어 탱크·미사일 등 장비 부대를 기대하고 인근 호텔의 스카이라운지를 찾았다. 천안문 방향으로 이동이 완벽하게 막혀서다. 이곳 역시 천안문 방향의 창가는 모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창가는 상부 지시라며 앉을 수 없다며 안쪽 자리를 권했다. 멀리 천안문 인근에 차량의 붉은 후미등만 보였다. 리허설 전체 규모도, 장비부대도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대신 사복 차림의 공안이 창가에 접근하는 손님을 통제하는 모습만 보였다.          

D-23일로 다가온 천안문 열병식 리허설 준비는 빈틈이 없었다. 이날 낮 천안문 앞 창안가 아스팔트에는 흰색, 노란색 페인트 표식을 꼼꼼하게 약 4㎞에 걸쳐 목격했다. 젠궈먼 앞 도로에 10만 시민 행진 대오 혹은 장비 부대의 집결 표지로 보이는 숫자로 시작해 천안문 지나 국가대극원 인근의 ‘도보 대오 해산선’이라는 표시까지 이미 만발의 준비가 갖춰졌다. 천안문 바로 앞에는 도보 부대의 대기 위치로 보이는 흰색 표식이 수십 ㎝ 간격으로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천안문 인근 베이징호텔은 이날 투숙 예약을 받지 않은 채 중국중앙방송(CC-TV)의 중계 차량과 통신 차량만 목격됐다. 천안문 광장에는 좌우로 네 개의 초대형 전광판이 ‘시스템 조정 중’이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가동되고 있었다. 천안문 좌우에는 붉은 관람석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창안가 인도 곳곳에는 이동식 화장실이 보였다. 1년여의 단장을 마친 중국 최고 지도부 집단 거주지 겸 집무실인 중난하이(中南海)의 정문 신화문(新華門) 안쪽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爲人民服務)”는 문구가 선명했다.
7일 국경절 열병식 리허설이 거행된 베이징 천안문을 지나는 창안가 일대에 열병식과 군중행진을 위한 숫자가 표기돼있다.
신경진 기자
리허설을 마친 당국은 8일 관영 신화사를 통해 베이징 시민의 이해와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 신화사는 “7일 오후 11시부터 8일 새벽까지 베이징 천안문 일대에서 약 9만명이 참가한 첫 연합 리허설이 거행됐다”며 “연습은 경축대회·열병·군중 행진·축하공연·행사전환·응급조치 등 여섯 부분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7일 국경절 열병식 리허설이 거행된 베이징 천안문을 지나는 창안가 일대에 열병식에 참가하는 도보부대의 위치를 가리키는 표식이 새겨져있다. 신경진 기자
총 3차례 예정된 리허설 중 첫 번째 연습에 관심을 끈 육상 장비부대의 참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신 7일 오후 6시 30분경 30대의 무장헬기로 편성된 공중부대가 천안문 광장 상공에서 목격됐다고 홍콩 명보가 8일 보도했다. 삼각 편대 헬기 9대로 구성된 인솔부대는 중국 오성홍기를 매달고 통과했으며 21대의 헬기 편대가 거대한 ‘70’ 대오를 이뤄 비행했다. 중국 인터넷 SNS에는 삼군의장대가 천안문 앞을 행진하는 사진과 군중 행진에 참석한 베이징 시민의 경험담이 속속 올랐지만 삼엄한 검열로 사진은 쉽게 검색되지 않았다.          

오는 10월 1일 신중국 성립 이후 16번째로 펼쳐질 천안문 열병식은 사상 최대 규모를 예고했다.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차이즈쥔(蔡志軍) 열병식 영도 소조 판공실 부주임은 “신중국 성립 50주년, 60주년 열병식과 승전 70주년 열병식보다 규모가 더 클 것”이라면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달라”며 미국 워싱턴까지 타격 가능한 최첨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東風)-41 등장을 배제하지 않았다.
7일 국경절 열병식 리허설이 거행된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대형 전광판이 세워져 있다. 신경진 기자
열병식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면서 베이징은 준(準)계엄 상태를 방불케 하는 삼엄한 경비에 돌입했다. 탱크 등 장비부대가 주둔할 것으로 알려진 공인체육관 일대의 호텔과 클럽 등 유흥업소는 지난 5일부터 영업을 중단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I)이 보도했다. 베이징으로 보내는 모든 우편물은 X레이 검사가 추가됐으며 검색을 거부하는 물품은 배송이 금지됐다. AFP는 중국 내 각종 매체에 ‘나쁜 뉴스’ 제재를 금지하는 통보가 내려졌으며 4억 8000만명이 가입한 SNS 웨이보(微博)에서 이미 검열로 게시물 1만5000여 건이 삭제되고 계정 1475개가 폐쇄됐다고 보도했다.
오는 10월 1일 국경절 열병식이 펼쳐질 중국 베이징 천안문 주위에 붉은색 관람석이 정비를 마쳤다. 신경진 기자
전시(戰時) 금주령도 발령됐다. 중국 서부 산시(陝西) 성의후밍랑(胡明朗) 공안청장 겸 부성장은 지난 4일 “성내 각급 공안기관에 9월 15일부터 10월 4일까지 전시 금주령을 발령한다”며 “엄격하게 기율을 적용해 신중국 성립 70주년 안정을 유지하는 전투에서 승리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