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 담고 있는 예리한 분석에 새삼 감탄한 일이 생겼다. 과거사, 특히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 등 가해 역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이 놀라울 정도로 ‘축소 지향’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9일 중국 난징(南京)대학살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자 일본은 발끈했다. 그러면서 중·일 전쟁 때인 1937년 12월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6주간 저지른 대학살의 사망자 수를 문제 삼았다. 30만 명 이상이라는 47년 난징시 군사법정 판결문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유네스코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고 질타했다.
일본 내에선 10년 전까지만 해도 난징 희생자가 최소 20만 명에 이른다는 게 정설로 통했다. 2005년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에서 “20만 명 이상이라는 설이 유력하다”는 내용이 심의를 통과했다. 10만 명을 축소하긴 했지만 조금이나마 양심은 살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정 정도 학살이 있었던 걸 인정해도 희생자는 2만~4만 명에 불과하다”며 억울하게 죽어간 중국인 수를 싹둑 잘라냈다. “원래 학살은 없었다”는 극우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비전투원의 살해와 약탈 행위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에 대해선 “일본 정부가 학살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셈”이라며 수정 요구가 거세다. 단순 축소를 넘어서 대학살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태다.
일본군 장교 2명이 일본도(日本刀)로 “100명을 참수했다”는 당시의 외신 보도도 믿을 수 없다는 게 일본 우익의 주장이다. 칼을 들고 서 있는 일본군과 무릎을 꿇은 채 뒤로 손이 묶인 중국인 남자의 사진은 그림자 방향이 엇갈리고 부자연스럽다며 비판한다. 중국 난징대학살 기념관에 전시된 학살 사진들의 신빙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사망자 수는 증거가 없다며 대폭 축소하고, 사진 등 명확한 증거를 들이대면 조작이라고 생떼를 쓴다.
일본의 ‘축소 지향’ 본능은 위안부 문제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피해자 수는 어떻게든 줄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강제연행 사실도 계속 부정한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며 ‘미래 지향’을 외친다. 증인과 증거가 모두 사라지길 기다리는 ‘시간 끌기’ 속셈이다. 어두운 과거는 축소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숨긴 것은 언젠가 반드시 드러난다. 진정한 반성과 사죄가 필요하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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