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편집자 레터] '소설보다 더 재밌는 논픽션 쓰기' _ 六何의 베일 뒤에 숨은 진실은…

바람아님 2015. 11. 27. 19:13

(출처-조선일보 2015.11.21 어수웅 Books 팀장)


어수웅 Books 팀장신문 기사의 기본은 육하(六何)로 요약됩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객관성과 명료성이 기본이죠. 하지만 길어봤자 200자 원고지 10장 안팎의 짧은 분량에서, 
육하를 제외한 눈물과 한숨은 증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출간된 '소설보다 더 재밌는 논픽션 쓰기'(정세라 옮김·유유 출간)는 퓰리처상 심사위원이자 
미국 일간지 '오레고니언'에서 25년 동안 편집국장을 역임한 잭 하트(Hart)의 글쓰기 실용서입니다. 
그의 호명대로라면 '내러티브 논픽션'을 쓰는 법이죠.

하트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30여 년 전 경찰서 출입 기자 한 명이 자신에게 달려왔답니다. 
한 젊은 엄마가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여 죽었다는 사연을 허겁지겁 풀어놓았다죠. 
하지만 일간지에서는 단신(短信)을 벗어나기 어려운 사안. 그러나 여인의 운명에는 어떤 얄궂은 사연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남자는 누구일까. 한낱 술주정뱅이일까 아니면 그 파렴치범에게도 눈물나는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던 것일까. 하트는 '막내 기자'를 자극해서 육하를 극복한 이야기를 쓰게 합니다.

'내러티브 논픽션'은 
육하의 베일 뒤에 감춰진 진실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는 겁니다
객관성과 명료성만 따르자면 살아있는 인간을 느낄 수 없고,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만 나열한다면 두서와 강약 없는 밋밋한 
이야기가 되겠죠. 
따라서 사실을 쓰되, 기승전결을 갖춘 드라마로 쓰는 거죠. 
주제는 무엇이며, 주인공의 욕망은 무엇이고, 
그걸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지를 정해서. 

열풍이라 부를 만큼,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요즘입니다. 
타인의 삶을 써야 하는 직업에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은 사람에게  
나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하트는 말합니다.


"우리는 논픽션을 읽으며 세상을 이해한다. 

같은 시대를 사는 다른 인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보여줌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을 알려줄 때 
우리는 그 힘을 실감한다. 
작가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문화부 기자가 자신의 지면에서 꾸는 꿈도, 물론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

[주간조선] 글쓰기 붐 일고 있는 현상의 양면성

(출처-조선닷컴 2013.05.09 김민희 주간조선 기자)

▲ 한·미 대학 글쓰기 전담 교원 수 단위: 명 글쓰기 관련 교원 중 다른 과목도 가르치는 경우는 제외했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주립대 
풀러턴캠퍼스 조제희 교수에 따르면 이 학교의 학생 수당 글쓰기 전담 교원 수는 미국의 평균 수준이라고 한다.

글쓰기 붐이 일고 있다. 글쓰기 관련 서적이 차고 넘친다. ‘글쓰기’를 표방한 책만 최근 1년 동안 100권이 넘게 출간됐다. 
수준별 글쓰기 가이드에서부터 미디어, 인문사회계, 이공계 등 분야별 글쓰기 가이드도 있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라고 하지만 글쓰기 관련 책은 하루가 멀다하고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온라인 교보문고에는 ‘글쓰기’를 별도의 항목으로까지 분류했다.

글쓰기 붐을 부추기는 원인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1인 미디어의 증가와 카카오톡, 메신저 등 글을 통한 소통이 늘면서 글을 쓸 기회가 많아졌다. 
이화여대 류철균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주간조선과의 전화 통화에서 
“디지털 시대에는 글쓰기가 폭발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 
첨단정보사회에서는 글 쓸 기회가 많아지고 글쓰기의 능력이 더 중요시된다”고 말했다.

독일계 프리미엄 필기구 ‘파버 카스텔’ 이봉기(64) 대표가 이 경우다. 
그는 최근 한 언론사 논설위원이 진행하는 글쓰기 특강을 이수했다. 
공연, 전시회, 여행 등을 다닌 후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감상평을 올리는 그는 
“글을 자주 쓰다 보니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전문가의 특강이 확실히 도움이됐다. 
이젠 글쓰기가 겁나지 않고, 글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 글쓰기 강좌는 40~60대의 기업 CEO(최고경영자)와 오피니언 리더 15명이 수강했다.

‘글쓰기 붐’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다. 
표면적 원인은 모바일 시대와 지식정보사회의 도래로 글쓰기 기회가 증가한 것이 원인이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면에는 체계적인 글쓰기 교습법의 부재로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한국인의 슬픈 현실이 반영돼 있다. 
직장 업무의 상당 부분은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현재 직장생활을 하는 30대 이상 한국인 중에는 체계적인 글을 쓰는 
훈련을 받아본 사람은 거의 없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논술 위주의 교육이었고, 대학교의 작문 수업은 띄어쓰기나 맞춤법 위주의 문장 중심 교육이었다.

한국인의 글쓰기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관한 객관적 자료를 찾기 위해 해당 분야 전문가를 수소문하고 
관련 논문을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그런 자료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작문학회 정희모 회장(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미국에서는 주(州) 단위로 쓰기 능력을 조사하지만 
한국은 자국어 읽기·쓰기에 대한 평가를 한 적이 없다. 학력평가는 읽기·쓰기와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글쓰기 실력이 미국이나 일본, 독일과 비교해 한참 뒤처진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대학 교육의 기초적인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저급한 수준” 
“작문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 등의 표현도 있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NIE 특임강사로 활동 중인 김승웅씨는 “현재 고등학생의 글쓰기 수준은 심각할 정도로 낮다. 
고등학교 3학년생의 글쓰기 수준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편집국장 출신인 김씨는 퇴직 후 3년 전부터 전국 고등학교를 방문해 글쓰기 특강을 하고 있다. 그의 말이다.

14년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풀러턴 소재) 영문학부에서 미국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온 조제희 교수는 
“한국의 식자층 중에는 저자 중심의 글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유력 일간지 논설이나 교수의 글에서도 자기들만의 언어로 쓴 글을 종종 본다. 
독자 위주의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기본이다”라고 했다.

국내 교육제도에서는 우수한 점수를 받는 학생이 미국 유학 후 좌절감을 겪는 가장 큰 원인도 에세이 쓰기다. 
조제희 교수는 “한국 유학생 절반이 중도 탈락하는데 그 원인이 에세이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명문대 출신이나 교수도 미국에 오면 에세이 때문에 쩔쩔맨다”라며 
“단순히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논문 표절’ 역시 글쓰기 교육의 미비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글쓰기 시간에 표절 방지 교육도 배운다. 즉 타인의 글 인용 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매뉴얼을 세세히 
배우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배우지 않았으니 남의 글을 베껴 쓰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거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가 재직 중인 캘리포니아주립대 풀러턴 캠퍼스에 있는 글쓰기 센터에는 40명의 글쓰기 도우미가 상주한다. 
이와 별도로 분야별 글쓰기 전담 교수만 40여명에 이른다. 
그는 “우리 대학의 수준은 중중상 정도다. 명문대일수록 글쓰기 교육을 강화한다”며 
“글쓰기 교육의 수준이 우수 대학의 척도다”라고까지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미국의 글쓰기 교육은 한국과 비교조차 안 된다. 미국의 모든 대학에는 글쓰기 센터가 별도로 있다
2년제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글쓰기 교육은 한국인이 인식하는 ‘첨삭’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띄어쓰기, 맞춤법, 비문 고치기 정도가 아니라 주제 설정에 따른 사고 방향, 전개 과정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하버드대학의 글쓰기 센터에는 역사, 심리학, 정치학, 철학, 사회학, 생명과학 등의 전문가가 참여해 
주제 토론과 글쓰기 교육을 병행한다.

예를 들어 ‘모바일 사회가 가져온 성(性) 역할의 변화’라고 하면 역사, 사회학, 생명과학 등의 전문가가 참여해 
학제 간 교류를 통해 글쓰기를 돕는다. 
스탠퍼드대학‘흄 글쓰기 센터’ 역시 문장 훈련에 그치지 않고 특정 주제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비판적 사고 훈련을 
거친다. 칼턴대학은 수업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취업이나 대회 참가를 위한 글쓰기를 위해서도 
글쓰기 센터의 문을 활짝 열어둔다.

MIT는 글쓰기에 매년 수십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는다. 
졸업 전까지 전공 글쓰기 과목을 포함해 4과목의 글쓰기 수강이 필수다. 
정희모 한국작문학회 회장은 “MIT를 방문했을 때 이공계 중심 대학에서 글쓰기를 왜 그렇게 강조하는지 물었다. 
MIT 글쓰기 교육 담당자 제임스 패러다이스 교수는 ‘MIT가 이공계 중심대학이긴 하지만 
주로 경영 책임자나 관리자를 양성하기 때문에 글쓰기 능력을 중요시한다’고 답했다. 
제안서 하나에 수백만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현실을 감안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고 했다.

변화의 바람을 주도한 것은 서울대다
서울대는 2004년 ‘인문학 글쓰기’ ‘사회과학 글쓰기’ ‘과학과 기술 글쓰기’ ‘법률문장론’ 등 전공별 글쓰기 과목을 개설해 
교양 필수로 지정했다. 단순한 문장 작법이 아닌 전공에 맞는 주제 글쓰기를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경희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역시 기초 교양 수업을 강화했다. 
경희대는 기초 교양을 담당하는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숙명여자대학교는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를 별도로 만들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기반으로 한 글쓰기 교육을 강화 중이다. 
경희대에서는 ‘나를 위한 글쓰기’ ‘세계를 위한 글쓰기’를 개설했다. 
글쓰기의 방법론뿐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 이 교과의 목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서와 사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무리 문장력이 탄탄해도 사고력의 깊이가 없으면 소용없다. 
이런 차원에서 글쓰기뿐 아니라 읽기와 말하기를 강조하는 커리큘럼을 강화한 대학도 눈에 띈다. 
숙명여자대학교는 ‘글쓰기와 읽기’ 외에도 ‘발표와 토론’ ‘인문학 독서토론 1, 2’를 개설하고 
이 중 세 과목을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역시 ‘고전 읽기와 글쓰기’를 2014년부터 개설할 예정이다. 
이화여대 교양국어실 김수경 특임교수는 이 수업에 대해 “한 학기에 7권의 고전을 읽은 후 고전에서 촉발받은 주제 중 
현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주제로 글쓰기를 하는 수업”이라며 “사고력과 토론이 기반이 된다”고 말했다.

글쓰기훈련소 임정섭 대표는 “한국인의 글쓰기 콤플렉스”를 지적했다. 
이제까지 한국인들은 글쓰기를 입시공부의 일환으로만 배웠기 때문에 글쓰기에 대한 강박증이 있고, 
글쓰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 
작가 위주의 글쓰기 교육도 한국인의 글쓰기 콤플렉스를 낳은 원인 중 하나다. 
즉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라는 글에 대한 숭배가 암암리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