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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의 한국 일기] 한국 선거는 재미있다

바람아님 2016. 3. 29. 10:58

(출처-조선닷컴 2016.03.29 팀알퍼 칼럼니스트)

한국 선거 유세, 재미·활기 넘쳐
후보자는 옆 트인 유세 차량서 지지대 붙잡고 위태로운 연설
등산로마다 흰 장갑 낀 아줌마들 선바이저 쓰고 열심히 율동
따분한 서양선거와 확연히 달라

팀알퍼 칼럼니스트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선거가 별로 흥미롭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넘게 한국에 살고 있는 영국인인 내게 한국 선거는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이번 4·13 총선도 고대하고 있다.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대한민국 영주권자인 나는 선거권을 갖고 있지만 지방선거에 국한된다. 
대한민국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지방자치 선거가 있을 2018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국에서 선거일이 즐거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날이 공휴일이라는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이제껏 선거일이 공휴일이었던 적이 없었다. 선거일에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나는 무척 사랑한다. 
선거일이 공휴일이 아니라면 한국의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다를 것 같다. 아마 한국 사장님들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소리를 
치지 않을까 싶다. "선거 따위는 신경 쓰지 마라. 민주주의도 좋지만, 우리는 지금 할 일이 태산이야!"

물론 한국의 선거가 즐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단지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의 선거 유세를 지켜보는 재미 또한 무척 쏠쏠하다. 
유럽의 선거 유세는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다. 
나이 지긋한 후보자가 비몽사몽 상태인 기자들로 꽉 찬 홀에서 연설하는 게 대부분이다. 
반면 한국의 선거 유세는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활기가 넘친다. 
후보자는 옆이 트인 선거 유세 차량에 올라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한 손으로 위태롭게 지지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천천히 손을 흔들며 거리를 돈다. 
롤러코스터보다 더 아찔하고 불안해 보인다.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미소 짓고 서 있는 후보자는 십중팔구 중년을 넘긴 남성이다. 
이들은 대개 풍채가 좋고, 머리가 벗어졌거나 혹은 가발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가발을 썼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부분 MC를 동반하는데, 
이 MC들은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을 더욱더 모양새 없어 보이게 하는 수려한 외모의 젊은이들이다.

[팀 알퍼의 한국 일기] 한국 선거는 재미있다
/이철원 기자
선거철이 되자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 후보자 한 명이 평일 퇴근시간에 맞춰 직장인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인근 지하철역 앞에 서 있다. 사람들이 쏟아져나올 때마다, 
그녀는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인사한다. 
그녀는 거의 매일 늦도록 미세 먼지와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 가득한 도로에서 유세 활동을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외면한 채 자신의 갈 길을 바삐 걸어간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닙니다, 선생님이 저희보다 훨씬 수고가 많으십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선 외국인을 거의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내 존재는 후보자들을 자주 혼란에 빠뜨린다. 
온종일 허리 숙여 인사를 하다가 내가 등장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하다. 
'저 서양인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하나? 
저 서양 사람이 투표권은 있을까?' 이렇게 자문하는 동안 땀 한 방울이 그들의 관자놀이 부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들은 대개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내가 빨리 사라지기만 기다린다.

선거 유세에 동원된 '알바생'들은 더 흥미로운 존재다. 
선거철이 되면 유명한 등산로 입구마다 흰 장갑(왜 반드시 흰 장갑이어야만 하는 것일까?)과 커다란 선바이저를 쓰고 
열심히 율동을 하는 아줌마들을 볼 수 있다. TV 방송도 선거의 재미를 배가한다. 
2012년 대선 당시 Imgur나 9gag와 같은 세계적인 유머 사이트는 한국의 개표 방송을 캡처해서 올린 사진들로 가득했다. 
한 채널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대결을 두 후보가 구르는 바위를 피하고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너는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로 구성해서 보여줘 서양 네티즌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이런 사진의 댓글에 한국인들은 "우리나라가 부끄럽다" 는 반응을 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인이 아닌 경우 "우리나라 선거도 이렇게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꽤 많다.

영국에서는 아무도 율동하는 아줌마 부대를 섭외하거나 음악을 커다랗게 틀거나 유세 차량 위에서 어색한 미소를 하고 
거리 유세를 하지 않는다. 영국 사람들은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과장되고, 시끄럽고, 눈에 띄게 행동했다간 남들이  진지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러 번 선거를 지켜본 나로서는 영국 방식이 더 낫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맞다. 영국식 유세는 좀 더 진지해 보인다. 그러나 따분함을 피할 길이 없다. 
전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정치를 지루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한국의 선거 유세는 놀랍도록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재미와 활기로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