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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돌아오지 않는 소년병

바람아님 2017. 7. 3. 10:53
한국일보 2017.07.02. 17:53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했을 무렵 동해안에서 크루즈를 타고 북한으로 건너가 ‘민족의 명산’을 난생 처음 구경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는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지만, 당시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관광객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북한의 병사들이 유난히 키가 작고 왜소한 ‘소년병’ 같아서 충격을 받았다. 북한의 입대 연령이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만 17세부터인 탓도 있겠으나, 식량난이 극심해 평균 신장이 줄어든 때문이라고 했다. 2012년에는 150㎝이던 입영기준 신장 하한선을 142㎝까지 낮췄다.


▦ 6ㆍ25 발발 67주년이던 지난달 25일을 전후로 라디오 방송에서 ‘돌아오지 않는 소년병’이라는 팝송이 종종 흘러나왔다. 중학교 시절 뜻도 제대로 몰랐지만, 슬프고 애잔한 목소리와 리듬에 빠져 즐겨 들었다. 1967년 미국 여가수 콜린 로벳이 부른 노래로 영어 제목은 ‘Freckle Faced Soldier’다. ‘주근깨 얼굴의 병사’라는 의미로, 소년병이 전쟁에 나가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담았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금지곡이 됐으나, 일본 음반회사가 싱글 음반으로 출시하면서 되살아났다.


▦ 올해 초에는 독일 소년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덴마크 영화 ‘랜드 오브 마인’(Land of Mine)이 개봉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덴마크 해안선을 따라 200만개가 넘는 지뢰를 묻었다. 문제는 독일 패망 후 덴마크가 포로로 잡았던 독일 소년병을 지뢰를 해체하는 작업에 투입한 것. 1945년부터 5월부터 약 5개월간 2,600여명이 투입됐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사망하거나 부상했다. 전쟁에 내몰린 소년병이 전후에도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죽어갔다.


▦ 6ㆍ25전쟁 때도 3만명 가까운 17세 이하의 소년병이 참전해 2,5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령이 된 소년병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4,000여명만 생존해 있다. 이들은 현재 84세 전후로 매달 참전수당 22만원 정도를 받는다. 정부는 국제적으로 인권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2010년에야 소년병 실체를 인정했다. 16대 국회부터 소년병 지원 관련 법률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자동 폐기를 거듭했다. 소년병 전우회는 최근 스무 번째로 ‘순국 소년병 위령제’를 열었지만, 세간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재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