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마음산책] 나보다 그를 더 생각한 하루

바람아님 2017. 7. 20. 08:59
중앙일보 2017.07.19. 02:19

고단한 외국인 노동자 하루 챙기다 보니 피로 말끔
당장 어려워도 남 도와야 ­.. 결국 날 이롭게 하는 일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올해는 감기를 두 번이나 앓았다. 건강한 체질이라고 자신해 왔는데 바쁜 일정 속에서 새벽마다 산에 오르는 것을 게을리했더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얼마 전, 아침에 일어나니 몸에 또 탈이 났다는 신호가 왔다. 다행히 그날은 법회도, 마음치유학교 회의 일정도 없어 병원에 다녀와 하루 푹 쉬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스치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스님, 한 시간 뒤에 뵈어요”라는 약속 확인 문자였다. 아차 싶었다.

문자를 보낸 친구는 지인들과 함께 몇 번 만난 적 있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명상에 관심이 많은 친구인지라 나와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약속을 잡았는데, 약속 날짜가 바로 그날이었다. 그 친구와 만나고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나타난 그 친구의 모습은 나보다 훨씬 초췌하고 지쳐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똑같은 동작으로 반복되는 노동을 하다 보니 며칠 전부터 손바닥과 손가락이 찌릿찌릿 아프다고 했다. 또 서서 작업을 하는지라 발바닥과 다리 근육도 많이 저리다고 했다. 직감적으로 침을 맞으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침을 맞아봤느냐고 물었다. 뾰족한 바늘로 살을 찌르는 것을 보긴 봤는데 무서워서 맞아본 적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약간 아플 수는 있지만 생각보다 아프지 않고 지금 증상에는 침이 가장 좋은 치료법 같다고 그를 설득했다.


침을 그러면 맞아보겠다는 답을 듣고 나니 막상 그를 데리고 치료를 받으러 갈 근처 아는 한의원이 없었다. 지인들에게 전화로 물어물어 그곳에서 멀지 않은 한의원을 찾았다. 역시 경험 많은 한의사는 친구의 몸을 살펴보고 문제의 원인을 바로 찾아 노련하게 침을 놓았다. 침을 맞은 친구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이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일러스트=김회룡]
나도 혼자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몸이 아팠던 경험이 많은지라 그 친구 같은 상황을 보면 안쓰럽고 마음이 많이 쓰인다. 이번엔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조금 주저하더니 고향 음식이 먹고 싶단다. 몸이 아프면 당연히 어렸을 때 집에서 편하게 먹었던 음식들이 떠오르는 법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근처에 있는 그 나라 전문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키고 원래 하려고 했던 명상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었다. 오랜만에 떠나온 고향 음식을 먹으니 너무 맛있고 집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난다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식당을 나서는데 조심스럽게 한 가지 부탁을 더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흔쾌히 괜찮다고 하니 자기 휴대전화에 문제가 생겨 수리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말이 짧아서 한 달이 넘도록 고장 난 휴대전화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불편하게 지냈을 생각에 바로 휴대전화 고치는 곳을 찾아갔다. 내가 휴대전화에 생긴 문제를 설명하니 아주 간단한 작업이라며 바로 수리를 해주었다. 몇 시간을 함께 돌아다니는 동안 그 친구의 아팠던 다리도 손과 같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예전처럼 아프지 않다며 신기해했다. 아침에 맞은 침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는 듯했다. 자신에게 있었던 크고 작은 긴급한 문제들을 스님 덕분에 해결하고, 게다가 먹고 싶었던 고향 음식도 먹게 되어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했다. 아침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로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그 친구를 배웅하며 왠지 뿌듯한 마음에 내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홀로 남고 보니, 그 순간 조금 놀라운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그 친구와 함께 한의원에 가고,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휴대전화를 고치고, 그렇게 몇 시간을 돌아다니는 동안 내 몸 아픈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아침에 깼을 때만 해도 안 좋은 컨디션이었는데 내가 돕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니 나도 모르는 힘이 났다. 더불어 내 몸 아프다는 사실의 무게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보다 훨씬 적게 느껴졌다.


우리가 살면서 그토록 힘든 것은 어쩌면 내 문제점만을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내가 남을 돕는 것은 내 상황이 좋아진 후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해 아주 작은 도움도 차일피일 미루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상태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누군가를 돕는다면 영영 그런 시절을 만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좀 아프면 아픈 대로 내 사정에 맞게 남을 돕겠다는 생각과 실천이 결국은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고 좀 더 완성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 친구를 도왔다고 생각한 그날은 어쩌면 그 친구가 나를 돕고 치유한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