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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나들이, 번잡함 피해 오붓하게 즐기자

바람아님 2018. 4. 6. 09:13


한겨레 2018.04.05. 14:43

 

장태동 여행작가가 ‘강추’하는 덜 알려진 서울 벚꽃 명소…도봉사·안산·남산·현충원·효창공원

남산 서울N타워 벚꽃

‘꽃사태’다. 해마다 4월이면 ‘화르락’ 피어올라 산천을 하얗게 불태우는 벚꽃이 ‘꽃사태’를 만들었다. 신록과 어울린 하얀 산벚꽃, 거리에 피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가로수 벚꽃, 아이들 손잡고 올라가는 뒷동산 벚꽃길 그리고 광복을 위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이 묻힌 곳에서도 벚꽃은 하얗게 피어 봄을 노래한다. 장태동 여행작가가 잘 알려진 벚꽃 명소의 번잡함을 피해,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벚꽃 명소 5곳을 소개한다.


꽃그늘에서 쉬다

도봉사 수양벚꽃

온 산천이 꽃을 피우느라 분주한 봄, 제자리에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꽃구경에 가벼워진 마음으로 찾은 북한산 도봉사 꽃그늘에서 봄의 쉼표를 보았다. 북한산둘레길을 걷다가 도봉사에 들렀다. 절 마당에 우뚝 선 수양벚나무에 꽃이 피었다. 낭창거리는 수양벚꽃 봄 햇살 아래 순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졸고 있다. 꽃잎에 부서진 햇살이 차분하게 마당에 쌓인다. 가끔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적막이 깊어진다.


가끔은 화려한 꽃길에서도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여의도 벚꽃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과 함께 나선 길, 여의나루역에서 마포대교 방향으로 걷는다. 사람들이 꽃송이처럼 많다. 서강대교 남단에 도착했다. 이쯤 되면 꽃에도 질릴 줄 알았는데 첫걸음 같다. 지금까지 꽃에 묻혀 걸었으니 이제 밖에서 꽃길을 볼 차례다. 서강대교 남단 서쪽 인도를 따라 북단 방향으로 걷는다. 어느 정도 가다 뒤를 돌아본다. 벚꽃길이 하얀 띠를 이루었다. 국회의사당 둥근 지붕이 벚꽃길 위로 솟았다. 그렇게 한 장면, 여의도의 봄 풍경이 마음에 남는다.

국회의사당 벚꽃

먹고사는 일에 밀리고 삶의 굴레에 치여 다투고 외면했던 가족의 시간이 꽃길에 비쳐 가슴이 먹먹하다. 반짝이는 꽃그늘에 앉아 쉬었다 간다.


여의도의 색다른 봄 풍경은 ‘샛강다리’(문화다리)에서 봐야 한다. 여의도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는 물줄기의 이름이 ‘샛강’이다. 샛강 둔치는 수양버들이 있어 아름답다. 신록 물드는 수양버들 가지가 바람이 부는 대로 나부낀다. 일렁이는 연둣빛 수양버들 숲 옆에 벚꽃길이 나란히 이어진다. 멀리서 다가오는 벚꽃길의 하얀 띠가 보인다. 그 풍경을 샛강다리 위에서 본다. 수양버들 연둣빛 숲과 하얀 벚꽃 띠가 어울려 여의도의 봄을 완성한다.

고구동산 벚꽃길

동작구 흑석동 동양중학교 정문에서 고구동산에 오르는 길은 살가운 봄바람 맞으며 온 가족이 산책하기 좋은 마을 뒷동산 꽃길이다. 산비탈에 들어선 작은 아파트 단지 위 한적한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흙냄새와 풀꽃 향기가 몸을 적신다. 제멋대로 가지를 뻗은 벚나무 가지에 꽃이 맑고 하얗게 피었다. 도심의 가로수에서 피어난 시들한 꽃잎이 아니라 생생하게 물오른 건강한 꽃잎이다.


고구동산 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벚꽃길이 이어진다. 운동장 한쪽 게이트볼장 옆 전망대에서 벚꽃길을 굽어본다. 한강과 남산, 도심을 지나 멀리 북한산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산 아랫마을에서 저녁밥 짓는 냄새가 피어오를 때쯤 하얀 꽃 핀 벚나무 위로 낮달이 떠오른다.


신록과 어울려 피어난 산벚꽃

산벚꽃은 신록과 어울려 ‘파스텔톤’으로 빛난다. 남산과 안산에 오르면 파스텔톤으로 빛나는 숲을 굽어볼 수 있다.

안산 산벚꽃

서대문구 안산은 안산자락길과 봉수대가 있는 정상에서 보는 풍경으로 유명하다. 약 7㎞ 정도 되는 안산자락길은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형 길이다. 중간에 전망 좋은 곳과 정자, 숲속무대, 메타세쿼이아길 등이 있다. 꽃 피는 봄이라면 봉수대가 있는 정상에 올라 산벚꽃 피어난 숲의 풍경을 굽어보는 시간을 놓칠 수 없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뒤 이진아기념도서관을 지나 포장된 오르막길로 가다보면 나무데크길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난다. 본격적으로 안산자락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안산자락길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코스도 여러 개다.


봉수대에 오르면 풍경을 한눈에 넣기에 벅차다. 서쪽 일부를 제외하고 서울의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한양도성 성곽이 바위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인왕산이 눈앞에 있다. 무리 지어 피어난 산수유와 개나리꽃이 인왕산 바위절벽을 노랗게 물들였다.

안산은 산벚꽃이 유명하다. 푸른 숲 곳곳에 자라난 산벚나무가 꽃을 피웠다. 연둣빛 신록과 산벚꽃 하얀빛이 어울렸다. 숲 사이 구불거리는 오솔길 옆에도 길 없는 숲에도 산벚꽃은 제멋대로 피었다.


남산 서울N타워로 올라가는 길, 한양도성 성곽 뒤에 하얀 벚꽃이 피어 배경이 되었다. 서울N타워 옆 전망대에 도착했다. 난간에 ‘사랑의 자물쇠’가 가득하다. 봉인된 사랑의 이야기, 저렇게 많은 속삭임이 봄바람을 타고 산 아래로 흩어진다.

숲의 정수리를 굽어본다. 하얀 꽃을 피운 산벚나무가 숲 여기저기에 박혔다. 꽃의 흰색과 신록의 연둣빛이 어우러져 ‘파스텔톤’으로 빛나는 숲 가운데 하얀색 띠가 굽이쳐 흐른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벚나무 가로수가 만든 벚꽃터널을 걸어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도착한다.


국립서울현충원과 효창공원서 빛나는 하얀 벚꽃

서울국립현충원 벚꽃

광복을 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이 묻힌 곳에서도 벚꽃은 하얗게 피어 봄을 노래한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수양벚꽃 ‘꽃사태’를 보려면 동작구 서울국립현충원을 찾아야 한다. 수양벚꽃은 수양버들처럼 낭창거리는 길고 가는 가지에 꽃을 피운다. 꽃송이를 맺은 가지를 늘어뜨린 모습이 꽃이 만든 폭포수 같다. 사람들은 그 아래 앉아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꽃 사이로 뛰어다니며 봄 햇살 같은 얼굴로 깔깔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도 환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서울국립현충원의 봄은 해마다 그렇게 사람들을 초대한다.


용산구 효창공원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의 묘역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세 명의 묘역, 그리고 삼의사 묘역이 있다. 임시정부 요인 세 명의 묘역에는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이동녕, 일본 총리대신 가쓰라를 암살하려고 했던 군무부장 조성환, 비서부장 차리석 선생이 잠들어 있다. 1949년 김구 선생도 이곳에 묻히셨다.


삼의사 묘역에는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정기 의사를 모셨다. 그런데 삼의사 묘역에는 무덤이 하나 더 있다. 삼의사 무덤 옆 또 하나의 무덤은 안중근 의사의 가묘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모시기 위해 1946년에 만들었다. 조국 광복을 위해 한평생 목숨 바쳐 살다간 분들이 묻힌 곳이어서일까? 묘역을 지키는 신록은 더 푸르고 벚꽃의 흰빛이 상서롭게 느껴진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