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5.05 손철주 미술평론가)
굽은 소나무와 곧은 소나무가 밑동에서 맞닿았다. 세월이 할퀴고 간 자국들이 나뭇결에 어지러운데, 그 세월을 등지고 앉은 듯한 노인은 외려 허리가 빳빳하다. 쓱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눈시울은 올라가고 눈동자는 노려본다. 완강한 광대뼈와 넓은 콧등, 굳게 다문 입술에서 결기가 풍긴다. 아니나 다를까, 왼쪽 아래에 세워둔 칼자루가 보인다. 그는 깔축없이 칼 쓰는 사람이다. 칼집에 숨어있어도 검기(劍氣)는 요동치는 것일까. 늘어진 넝쿨은 고요하지만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파르르 날리고 머리 위에서 건(巾)이 나부낀다.
화가는 그가 누군지 넌지시 밝힌다. '중국인이 그린 검의 신선을 흉내 내봤다(倣華人劍僊圖 奉贈醉雪翁)'고 그림 속에 써두었다. '검의 신선'이라면 다시 물을 것도 없다. 곧 당나라의 문인 여동빈(呂洞賓)이다. 시 잘 짓는 학자이자 벼슬을 버린 은자, 게다가 칼솜씨 하나로 살아서 신선의 반열에 오른 존재다. 여동빈은 깔끔하고 여무진 이미지 덕분에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누린, 문자 그대로 '아이돌'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유혹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했다.
"나에게 칼이 세 자루나 있다.
번뇌를 끊는 칼, 분노를 끊는 칼, 색욕을 끊는 칼."
욕망을 잘라내서 그런가, 그 얼굴이 서늘하고도 맑게 그려졌다.
그린 이도 여동빈을 좋아한 인물이다. 문인화가인 이인상(李麟祥·1710~1760)이다. 그는 늘 '탈속'을 꿈꾸었다.
하도 심지가 굳어 벼슬할 때는 일 처리에 날이 선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그림에서 칼날을 보여주지 않는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검객'이란 시가 생각난다.
검객 / 가도 劍客 / 賈島
십년 동안 칼 한 자루 갈았지만 十年磨一劍(십년마일검)
서릿발 같은 칼날 아직 쓰지 않았지 霜刃未曾試(상인미증시)
오늘에야 그대에게 보여주노니 今日把贈君(금일파증군)
그 누가 공평치 못한 일 하던가 誰有不平事(수유불평사)
뽑을 때는 신중히, 뽑은 뒤에는 단호히, 그렇게 써야 칼답다.
<큰이미지 : '검선도(劍仙圖)' - 이인상 그림, 18세기, 종이에 담채, 96.7×61.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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