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03.04. 00:15
젊은 청년이 협상의 달인인
트럼프 이길 도리는 없었다
전화의 하노이 미와 손잡았듯
평양도 서울서 탈출구 찾아야
기차는 20세기 혁명의 이미지를 실고 달렸다. 초음속 여객기와 우주항공의 시대에 그 낡은 혁명정치를 세상에 전파하려는 듯이 말이다. 세계인은 마치 흑백영화를 보듯 격랑의 세월을 회고했을 것이다.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기관차가 닿은 곳은 베트남 국경, 중월분쟁으로 얼룩진 동당역(驛)이었다. 조선과 베트남이 기관차로 연결된 유사 이래 최초의 사건이었다. 240년 전, 청 건륭제의 명령을 받은 기병 10만이 처음 디딘 땅, 그보다 훨씬 전, 쿠빌라이 칸의 몽골 군대가 월남 정복을 감행할 당시 건넌 국경이었다. 중국에 짓밟힌 수백 번의 전투에서 유일한 두 번의 승전이 그것이다. 청 기병을 몰아낸 응우옌후에(阮文惠), 몽골 기병을 퇴각시킨 찐흥다오(陳興道) 장군. 번영하던 모든 베트남 왕조를 기마병으로 번번이 짓밟은 중국은 월남인의 민족 원수이지만 중국의 동맹국에 기꺼이 국경을 열었다.
월남과 조선은 중국의 변방국이면서 위상이 달랐다. 월남은 중국에게 천덕꾸러기였고, 조선은 학문을 연마하는 모범생이었다. 북경에 간 조선사신이 인질로 잡혀온 베트남 왕족을 더러 만나보기는 했었다. 반미전선을 다지려 오래 전 김일성주석이 베트남을 방문하기도 했다. 오늘 월남은 핵보유국이 된 애꿎은 형제국에 역사적 우의를 지키려 남행 기차를 환영했다. 게다가 북미정상회담의 모든 비용을 댔다. 월남인은 김정은에게 뼈에 사무치는 한 마디 말을 건네주고 싶었을 것이다. ‘핵을 포기해라, 인민을 먹여 살려라, 그게 살 길이다’라고.
인류문명사에 최대의 적은 핵무기다. 핵무기 제조에도 격한 모험이 필요하지만, 일단 확보된 핵을 폐기하기란 더욱 힘들다. 최강 국가를 테이블에 앉힐 수 있는 마력(魔力)과, 적대국가에 해원할 수 있는 괴력(怪力)을 동시에 품는다. 그런데 마력과 괴력을 즐기는 데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일단 만들어진 핵무기는 제조자의 논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독자 논리로 굴러간다. 핵무기는 ‘폐기’보다는 ‘폭발’되고 싶은 본능을 갖고 태어난다. 폭발본능을 억제하는 것이 정치이고 국제정치 역학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핵무기의 폭발본능을 통제하려 만났지만, 수준과 방식이 달랐다. 스몰딜(small deal)이나마 애타게 고대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진로도 일단 막혔다. ‘곧 만나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한 통화를 받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3.1절 기념사에서 문재인대통령이 밝힌 ‘신한반도 구상’이 끝난 것은 아닐 터이다. 외려 비중이 더 커졌다고 할까. 오늘 아침 석가장을 통과할 ‘혁명의 기관차’에서 김정은은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개혁개방으로 활력을 되찾은 하노이의 풍경과, 전력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평양을 비감하지 못하는 통치자는 역사의 패륜아다. AI와 가상현실의 시대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의 길을 결코 순탄하게 놔두지 않는다. 독자논리로 굴러갈 핵무기도 김정은을 배반할 날이 온다. ‘신한반도 구상’은 김정은의 처절한 좌절에서 시작한다. 마치 전화(戰禍)로 괴멸된 하노이가 적대국 미국과 손을 잡았듯이, 평양도 서울에서 탈출구를 찾아야할 때가 온 것이다. 하노이와 평양을 잇는 도보다리, 서울, 이제 나설 때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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