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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장벽 붕괴 때 동독 돈 모은 北외교관, 서독 마르크와 1:1 교환 '대박'

바람아님 2019. 11. 17. 16:53

(조선일보 2019.11.16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일러스트= 안병현일러스트= 안병현


지난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에 다녀왔다. 독일은 북한 외교관으로 있을 때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2004년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로 파견돼 런던으로 갈 때는 온 가족이

베를린에 들러 브란덴부르크문과 베를린 장벽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대한민국 국민이 돼 다시 가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인 1989년 11월 9일은 내가 북한 외무성에 들어간 지

1년쯤 지났을 때였다. 20대 후반 '붉은 외교관(공산당 외교관)'이었던 나는

동독이 '물 먹은 담벽처럼'(북한 농촌에선 시멘트가 적어 집 지을 때

나무 대에 진흙을 바른 뒤 겉에 시멘트를 약간 바른다. 공사 중 비가 오면

흙이 씻겨 내려 벽이 무너지는 일이 종종 있다)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동독의 실책을 분석하라고 외무성에 지시했다.

살펴보니 가장 큰 오류는 동독 정권이 사회주의 복지 시스템만 잘 운영되면 주민이 서독 방송을 봐도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현실은 반대였다. 1970년대부터 서독 TV를 봐온 동독 주민은 서독 TV에 비친

물질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에 매혹됐다. 당국의 감시만 있으면 통제가 가능하다고 보고 동서독 주민 사이에 통행과

서신 교환을 허용한 것도 큰 실책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89년 8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제한을 풀면서

동독 주민 1만여 명이 한꺼번에 헝가리를 통해 서독으로 탈출한 것이었다.


김씨 일가는 북한 주민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거쳐 대량 탈북하면 휴전선도 물 먹은 담벽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정일은 자본주의 불순 사상이 북한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을 열기 전에 철저히 방충망부터

먼저 쳐야 한다'는 '모기장 이론'을 내놓았다.


독일 통일이 급물살을 타자 베를린에 나가 있던 북한 외교관들은 '큰돈은 건국과 망국 때 벌어야 한다'며

한몫 챙기려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서독 정부가 동독 화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일부 언론에선 서독이 동독 화폐 무효화를 선포하고 쿠폰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했고, 전문가들은 현실 가치에 맞춰

교환 비율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동서독 간 공식 환율은 2대1이었으나 국가 부도 상태에 이른 동독의 화폐는

거의 휴지조각으로 여겨졌다. 암시장에는 4대1로 교환되고 있었다.


강심장이었던 한 북한 외교관은 '통일이 되면 동독 주민에게도 서독과 꼭 같은 삶을 보장하겠다'는 콜 총리의

말이 실린 신문 1면 기사를 가위로 오려 가슴속에 품고 다녔다. 그는 대사관 동료는 물론이고 북한 회사들에 있던

지인에게도 연락해 수십만마르크를 베를린으로 가져와 암시장에서 동독 마르크를 사들였다.

몇 달 동안 가슴을 졸였는데 화폐 교환 비율이 1대1로 정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서독 정부는 동독 주재 외교관의 계좌에 있던 동독 마르크를 모두 교환해 줬다.


옆 동료가 일확천금을 얻는 것을 본 대사관 직원들은 다음 작전을 준비했다.

동독 통화 가치가 2배 이상으로 절상되자 동독 주민은 만세를 불렀지만 동독 기업들은 파산에 직면했다.

북한 외교관 여러 명이 매물로 나온 값싼 동독산 초콜릿과 손풍금을 대량 구입해 북한으로 보냈다.

중국제나 소련제만 봐왔던 북한 주민에게 대인기였다. 독일에 출장 갈 때마다 아내와 동료가 초콜릿을 부탁했다.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저렴한 상점인 리들(LIDL)이나 알디(ALDI)에서 초콜릿을 샀다.


그때 생각이 나 이번에 독일에 갔을 때 '리들'에 들러 초콜릿을 샀다.

아내와 애들에게 주었더니 한국에 와서 세상 좋다는 초콜릿을 다 맛보았는데도 독일 초콜릿이 역시 최고라고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나는 30년 후면 우리나라도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해가 만 30년이 되는 해지만 통일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 역사적 과제를 풀 날은 과연 언제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