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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87] 하수관

바람아님 2014. 4. 15. 11:17

(출처-조선일보 2012.10.31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강물이 식수원이자 동시에 자연 하수처리시설로 이용되던 시절, 대도시의 위생 상태는 끔찍할 정도였다. 위생 수준이 최악의 지경에 이르렀다가 오히려 이를 계기로 공중보건 혁명이 일어난 곳은 19세기의 런던이었다.

1827년에 나온 한 팸플릿은 당시 템스강의 상태에 대해 "130개 이상의 공용 하수구, 쓰레기장과 거름더미에서 흘러나온 오수, 병원이나 도살장의 쓰레기, 염료, 납, 비누 원료, 제약 공장 및 각종 제작소에서 나온 폐기물, 동물 사체로 가득 차 있다"고 묘사했다. 당시 성업 중이던 수도 회사들은 큰 이물질을 제거하는 여과 장치를 도입하거나 물을 끌어오는 관을 오염이 덜 심한 상류 쪽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할 뿐이었다. 오염은 갈수록 심해져서 1833년 이후 템스강에서 연어가 사라졌다.

무엇보다 체계적인 하수 처리 시설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혁신적 위생 설비인 수세식 변소가 급속히 늘어난 것이 역설적으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분뇨가 넘치는 템스강은 참을 수 없는 악취를 뿜어냈다. 
런던 역사에서 가장 덥고 건조했던 1856년 여름에는 도시 전체가 '대악취(the Great Stink)'에 시달렸다.

악취보다 무서운 것은 전염병이었다. 1848~1849년과 1853~1854년 두 차례의 콜레라 발병으로 수십만명이 사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콜레라가 오염된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예컨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도 이런 견해를 믿었다. 
그러나 점차 물이 문제라는 점이 명백해져서, 시 당국이 올바른 대책을 강구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런던 지하에 정교한 하수도 망이 건설되었다. 
일부 하수관은 오수를 런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하류로 보내기 위해서 강과 평행하게 길게 이어 건설했다. 
일부 저지대에서는 오수가 주요 하수관에 원활하게 유입되게 하기 위해 관을 높여서 묻기도 했다. 
이런 시설을 만들면서 물속에서도 매우 높은 내구성을 유지하고, 기존의 로만 시멘트보다 세 배 이상의 압력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포틀랜드 시멘트를 쓴 것도 또 다른 혁신이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런던은 가공할 콜레라의 위험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다.

런던의 사례는 세계로 확산되었다. 1910년 무렵 조성된 벽돌식 하수관이 서울 시내 지하에서 발견되었다. 
일제 강점하에서이지만, 땅 밑에서부터 근대적 발전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