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4. 2. 1. 00:14
피오렐로 라과디아(1882~1947·사진)는 이탈리아 이민의 후손이었다. 미국 뉴욕대학을 졸업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소령으로 제대한 뒤 뉴욕의 치안 판사가 됐다. 1920년대 어느 겨울 한 노인이 절도죄로 잡혀 왔다. 나흘을 굶고 식료품 가게에 들어가 빵을 훔친 죄 때문이었다. 빵값은 10달러 정도였다. 그 노인을 심문한 라과디아 판사는 그에게 10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 노인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
그러자 라과디아 판사가 다시 평결을 내렸다. “이 노인이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살게 된 데에는 이 비정한 도시에 사는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이 잘못에 대해 나 자신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합니다. 그리고 이 법정에 온 모든 참석자도 함께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각기 5센트의 벌금을 선고합니다.”
그러고는 모자를 돌리니 누구도 군말 없이 벌금을 냈다. 헤아려 보니 모인 돈이 57달러50센트였다. 라과디아 판사는 모인 돈에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납부하고 나머지를 그 노인에게 줬다......라과디아 판사가 이탈리아 출신 동족이라는 이유로 마피아의 회유와 협박을 많이 받았으나 타협 없이 요지부동으로 범죄를 다스렸다. 그러한 강직함과 인간미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23년 주의회에 진출해 1933년까지 하원의원을 역임했다. 그 뒤에는 1934년부터 뉴욕 시장을 4년씩 세 번 역임했다.
시장에서 물러난 뒤 그는 유엔에서 구호국 사무총장으로 일하다가 65세의 연부역강한 나이에 타계했다. 1953년 뉴욕시는 그의 업적을 기려 뉴욕 공항을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름을 바꾸고 동상을 세웠다. 지금은 주로 국내선 공항으로 쓴다. 우리 정치에는 왜 그런 감동이 없을까.
https://v.daum.net/v/20240201001423502
[신복룡의 신 영웅전] 라과디아 판사의 심금 울린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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