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먼 길을 가려면 걷거나 말을 타는 수밖에 없다. 걷든 타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장하기도 하고 목도 마르다. 그래서 쉴 곳을 찾으면 주막이 있다. 이제 조선시대 주막을 좀 구경해 보자.
그림 (1)은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주막」이다.
짚으로 엮은 지붕 아래 왼쪽에는 주모가 구기로 술독에서 술을 떠내고 있고 옆에는 치마꼬리를 잡고 칭얼대는 어린 아들이 있다.
오른쪽에는 패랭이를 쓴 사내가 대충 밥상을 앞에 놓고 그릇을 기울여 마지막 한 술의 밥을 뜨고 있다.
국에 만 밥인가, 아니면 물에 만 밥인가. 이 사내가 쓴 패랭이는 대를 가늘게 쪼갠 댓개비로 갓 모양으로 엮은 모자다.
패랭이는 원래 여러 계층의 사람이 두루 쓰는 것이었지만, 조선시대가 되면 대개 천민이나 보부상이 쓰는 것이었다.
보부상이 쓰는 패랭이에는 목화송이를 달지만 이 사내는 그것이 없다. 아마도 이 사내는 여행 중에 있는 천민일 것이다.
패랭이 쓴 사내의 뒤에는 망건도 하지 않은 맨 상투의 사내가 입에 짧은 곰방대를 물고 주머니를 열고 있다.
아마도 밥값을 내려나 보다. 한데 이 사내 역시 배꼽까지 내 놓고 있는 것을 보아서 당연히 양반은 아니고,
패랭이 쓴 사내와 거의 대차 없는 신분일 것이다.
그림 아래쪽 초가집 안에는 이미 여러 차례 본 바 있는 주모가 술과 안주를 팔고 있고, 그 앞에는 언치 얹은 소를 끌고 온 행인이 술을 사기 위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있는 참이다. 그 길을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박을 올린 초가집이 보이는데, 역시 술을 파는 아낙이 앉아 있다. 나귀를 끌고 온 댕기머리 총각이 막 찾아들고 있으며, 그 위쪽으로는 사선(紗扇)을 쥔 양반이 주막집 문으로 막 들어서려는 참이다. 이처럼 길을 따라 여러 주막이 동시에 영업을 하는 곳도 있었던 것이다.
주막 안을 보면 한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큰 그릇을 들고 뭔가 일을 하고 있다.
이 사람 앞에는 소반이 하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젓가락이 세 벌 놓여 있다. 이제 막 밥상 혹은 술상을 차리는 참인 것이다. 소반 주위에는 동이와 자배기, 그리고 술병이 놓여 있다. 대문 앞에 부담 지운 말을 앞세우고, 양손을 소매 속으로 넣고 몸을 웅크린 채 막 주막의 술청으로 들어서는 사내가 있다. 이 사내는 저 술단지와 술병의 술로 언 몸을 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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