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8.16 김두규 교수 우석대)
유명 인물이 구속되거나 소환될 무렵, 집이나 사무실에서 압수하는 귀중품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유명 화가의 작품이다.
그림은 재테크, 비자금 세탁, 뇌물 등 다양한 목적에 쓰인다.
순수예술 그 자체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그림도 재수가 좋은 것이 있고, 불운을 가져다주는 그림이 있다.
다른 장르의 그림은 모르겠으나 산수화는 분명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산수화 전문가도 아니며, 그릴 줄도 모른다.
그런데도 산수화와 인간 사이의 운명 관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풍수 때문이다.
산수화와 풍수가 어떤 관계를 맺기에 그러한가?
한때 풍수와 산수화는 둘이 아닌 하나였다. 고증 가능하다. 풍수의 핵심 구성 요소는 산과 물이다.
산수화 역시 그 핵심은 산과 물이다. 풍수와 산수화의 공통분모이다.
풍수사(風水史)와 산수화사(山水畵史)를 추적하다 보면 중국 송나라 때를 즈음하여
풍수와 산수화가 의도하는 바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이 둘이 땅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보자.
조선조 풍수 관리(지관·地官) 선발 필수과목인 '명산론(明山論)'은 대지를 신체에 비유하여 "흙은 살이고, 바위는 뼈이며,
물은 피가 되고, 나무는 모발이 된다"고 하였다. '명산론'의 저자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알려진 채성우(蔡成禹)이다.
산수화를 잘 그려 궁정에서 활동하였던 곽희(郭熙)는 자신의 화론(畵論)을 정리한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말한다.
"산은 큰 물체(大物)이다. … 산은 물로써 혈맥을 삼고, 덮여 있는 초목으로 모발을 삼으며,
안개와 구름으로써 신채(神彩)를 삼는다. … 바위란 천지의 뼈에 해당한다."
곽희(郭熙) 역시 채성우(蔡成禹)와 동시대를 살았던 송나라 사람이다.
이성(李成)의 청만소사도(晴巒簫寺圖) 부분.
넬슨 아트킨스 미술관 소장.
풍수는 땅을 글로써 설명하고, 산수화는 그림으로써 설명하고자 하였다.
동전의 양면이랄까? 왜 그러한가? 앞에서 소개한 '임천고치'는 산수화의 고전이다.
'임천고치'는 말한다.
"산수(山水)에는 한번 지나가 볼 만한 곳(可行者), 멀리서 바라볼 만한 곳(可望者),
놀 만한 곳(可游者), 거주할 만한 곳(可居者) 등 네 가지가 있다."
이 네 가지 가운데 살 만하고 놀 만한 곳을 취하여 그림(산수화)을 그려야 한다.
군자는 그 산수화를 보고 감응을 받는다.
산수화는 형편상 그곳에 가서 살 수 없는 군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산수화(山水畵)는 살 만한 것이어야 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만약 산수화에 물이 없다면 그 그림은 가치가 없다.
물이 없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듯, 물이 없는 산수화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재수 없는 그림이 된다.
풍수도 마찬가지이다.
산 사람을 위한 터와 죽은 사람을 위한 터를 나누어 찾는다.
산 사람을 위한 터는 다시 주거, 종교, 레저 등 그 목적에 따라 터의 입지나 조건이
달라진다.
용도에 부합하면 잘되고, 용도에 맞지 않으면 생산성이 떨어져,
결국에는 망하게 된다는 것이 이른바 풍수발복론이다.
그렇다면 산수화도 풍수처럼 분명하게 발복론이 있다고 주장하는가?
'임천고치(林泉高致)'의 다음 문장이 그 답변이 될 것이다.
"그림(산수화)에도 관상법이 있다.
이성(李成)의 자손이 번성하고 잘되었다. 그가 그린 산수화는 산기슭과 지면이 모두 두껍고 넓고 크며(渾厚闊大),
산봉우리는 빼어나고 산 아래는 풍만하다(上秀而下豊). 후손들이 번영하는 상(相)과 합치한다."
이성(李成)은 중국 송나라 때(10세기경)에 생존하였던 유명한 산수화가였다.
전적으로 믿을 바는 아니나, 집이나 사무실에 산수화를 걸어두거나 소장하고자 할 때 참고할 만한 이야기이다.
유명 작가 비싼 그림만이 재수 좋은 것은 아니다.
<게시자 추가 이미지>
이성(李成)의 청만소사도(晴巒簫寺圖) 부분. 넬슨 아트킨스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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