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청회 여관에서

바람아님 2014. 8. 23. 08:02

(출처-조선일보 2014.08.23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청회 여관에서

벽을 뚫어 문을 내고 처마는 땅에 닿고
여관방은 콩알만 해 겨우 몸을 들여놨네.

평생토록 긴 허리를 굽히려 안 했건만
지난밤은 다리 한 짝 뻗기조차 어려웠네.

쥐구멍으로 연기 들어와 칠흑처럼 어두운 데다
작은 창은 꽉 막혀서 새벽빛이 못 들어오네.

그래도 옷이 젖는 것은 모면하게 됐으니
떠나면서 은근하게 주인에게 인사하네.


淸淮旅舍

穿壁爲門簷着地(천벽위문첨착지)
室中如斗僅容身(실중여두근용신)


平生不欲長腰折(평생불욕장요절)
今夜難謀一脚伸(금야난모일각신)


鼠穴煙通昏似漆(서혈연통혼사칠)
甕窓茅塞本無晨(옹창모색본무신)


猶能免我衣沾濕(유능행면의첨습)
臨別殷勤謝主人(임별은근사주인)

 

17세기 문신 조경(趙絅·1586~ 1669)이 여행 중에 허름한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묵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 비좁고 허술한 집이다. 
아니나 다를까 겨우 들어갔더니 사지를 뻗기도 어렵다. 
허리가 뻣뻣하여 한평생 남에게 굽혀본 적이 없는 허리도 이 집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너구리굴로도 모자라 창문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서 떠나고 싶어도 새벽이 올 것 같지 않다. 
그래도 한뎃잠 자지 않은 게 어디냐면서 "하룻밤 잘 잤소이다" 인사하고 길을 떠난다. 
언짢아하고 화내본들 어쩌랴? 
먼 옛날 새우잠을 잔 과객의 헛헛한 푸념이 들려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