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2.15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불멸의 작가 오웰, 타계 70주년
프랑스 대표 만화가들이 모여 전체주의 국가의 참상 알리고
평생 하층민 대변하는 글 썼던 그의 삶 담아 그래픽 전기 출간
조
지 오웰
피에르 크리스탱 글·세바스티앵 베르디에 등 그림
최정수 옮김ㅣ마농지ㅣ160쪽ㅣ2만원
전체주의 국가의 참상을 그린 소설 '1984'와 소련 공산주의를 풍자한 우화소설 '동물농장'을 쓴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이 올해로 타계 70주년을 맞았다.
그의 70주기를 앞두고 지난 한 해 전 세계적으로 오웰 재조명 열풍이 불었다.
'1984'와 '동물농장' 판매량이 올랐고 그의 작품 세계를 다룬 해설서와 전기(傳記)들도 쏟아져 나왔다.
오웰이 두 작품에서 그렸던 전체주의의 망령이 세계 곳곳을 배회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부른 '오웰 신드롬'이다.
그래픽 전기 형태로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도 그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 국민 만화로 불리는 '발레리안과 로렐린' 시리즈를 쓴 작가 크리스탱이 오웰의 삶을 글로 압축했고,
함께 참여한 만화가들은 그가 살던 시대 풍경과 작품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기본 스토리를 흑백 그림으로 이어가는 가운데 오웰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담은 장면을 컬러 그림으로 곳곳에 실어
입체감을 높였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등
명(名)문장들도 전기의 맥락과 어울리는 지점에 배치했다.
오웰의 생애는 길지 않았지만 한 가지 단어로 축약할 수 없는 다층적 삶을 살았다.
그는 언론인이자 소설가였고,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전체주의를 증오했다.
평화주의자였지만 파시스트에 대항해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었고, 제국주의를 혐오하면서도 영국을 사랑했다.
중산층 출신이지만 평생 하층민과 함께하며 그들을 대변하는 글을 쓰고자 했다.
그들과 대화할 땐 명문 이튼스쿨을 다닐 때 몸에 밴 고상한 말투와 억양을 죄스러워했다.
책은 절묘하게도 이 모든 요소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면서 성공적으로 축약했다.

담배를 들고 집필 중인 조지 오웰. 폐결핵을 앓으면서도 담배를 끊지 않았던 그는
소설 ‘1984’를 발표하고 이듬해인 1950년 세상을 떠났다. /마농지
1922년부터 5년간 식민지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복무한 오웰은
'제국주의를 혐오하는 제국주의의 앞잡이', '인종차별을 증오하는 백인'이라는 자기모순을 날카롭게 자각했다.
이런 심리적 갈등은 동의할 수 없던 체제에 용기 있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자책감으로 발전했고,
소설 '버마 시절'에서 자신의 분신이었던 주인공을 권총 자살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됐다.
이후 오웰은 '신념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하층민을 다룬 생생한 르포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부랑아들과 함께 런던의 노숙자용 숙소를 전전하거나
파리 호텔에서 접시닦이를 한 뒤에 썼고, '위건 부두로 가는 길'도 영국 탄광지대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함께한 뒤 발표했다.
'카탈루냐 찬가'도 파시즘에 맞서 공화주의를 옹호한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 세상에 내놓았다.
오웰은 교조적 맹신을 경계한 지성인이었다.
자기 확신을 갖고 뛰어든 스페인 내전에서 좌파의 분열과 소련 공산당의 억압적 본질을 목도한 뒤
그는 전체주의에 맞서는 문학 세계로 이동했다. 말끝마다 프롤레타리아를 입에 올리면서도 안락한 삶을 추구하던
영국판 강남좌파들을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오웰의 성품을 드러낸 부분에선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의 남달랐던 차(茶) 사랑을 만화적으로 강조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스페인에서 교전 중 총알이 가슴 높이로 날아와 참호 뒷벽을 때리는데도 오웰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서서
찻물을 컵에 부었다.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전우들 표정이 코믹하게 묘사돼 있다.
'오웰 이후'라는 제목을 단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다양한 장르에서 부활을 거듭하는 오웰을 기린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브라질'이나 소설가 시몽 레의 '마오 주석의 새옷' 등은 '1984'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책에 거론되지 않았지만,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 나오는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라는 문장의 의미를 극적으로 탐색한 작품이다.
'1984' 이후 탄생한 형용사 '오웰리언(Orwellian·전체주의적인)'도 불멸성을 획득했다.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다. 저자는 오웰이 남긴 위대한 유산은 그가 필명을 따온 강과 닮았다고 말한다.
'오웰강의 수면은 겉보기에는 잔잔하지만 깊은 곳에서는 마구 소용돌이치듯이, 어떤 수수께끼는 한 사람과
그의 작품에 영원히 머문다.'
불로그내 같이 읽을 거리 : |
[2017 올해의 책 10 ] - 美 보수의 현재·사피엔스의 미래… 우리는 이런 책들을 선택했다 "잘났건 못났건 같이 살자" 백인 노동계층의 진솔한 고백
힐빌리의 노래 J.D.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흐름출판/ 428쪽|1만4800원 사실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룬 책은 아니다. 미국 애팔래치아산맥 지역에 정착한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가문 및 그 이웃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날품팔이, 소작농, 광부를 거쳐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아온 백인 빈곤 계층이다. 힐빌리(산골 백인),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라고 불리며 멸시당하곤 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그들 중 한 사람인 저자가 솔직히 털어놓은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걸까. 간단하다. 이 특수한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보편적 징후를 읽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바로 그 사람들이니까.
저자는 자기 이웃들이 오바마로 상징되는 진보 엘리트를 왜 싫어하는지 설명한다. 그들 눈에 아이비리그 출신 지식인인 오바마는 외국인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리버럴들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는 예의 바르게 빈곤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말하지만, 힐빌리가 실제로 목격하는 현실은 아이를 방치하는 마약중독자 부모와 나태한 '복지 여왕'들의 천국이다.
공화당의 부자들은 값싼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중국과 무역해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관심이 있지 힐빌리들의 삶에 관심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민주·공화 양당 대신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가장 합리적인 경고 메시지다. 이들은 전 세계에 있다.
필리핀에서는 두테르테에게 열광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반문명적 퇴행을 진심으로 원할까? 아니다. 이들의 속내는 '너희 잘난 놈들만 잘살지 말고, 같이 좀 살자!' 아닐까. 세계화도 좋고 인공지능도 좋고 인권과 다양성 존중도 좋은데, 그게 엘리트들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진짜로 좋다는 걸 믿게 만들어 달라, 증거를 보여 달라, 우리를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낙오자 취급 말고, 너희가 말하는 찬란한 인류 진보 대열에 주인으로 동참하게 해 달라는 외침 말이다.
자본주의니 주변부니 하는 엘리트들의 말 한마디 없이 무덤덤하게 우리 힐빌리들은 이렇게 살아왔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더 귀한 증언인 것이다.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특권이 불러온 교육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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