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2.29 장강명 소설가)
안 그러면 아비규환
장강명 소설가
요즘 한국 문학에서는 이른바 문단문학과 장르 소설의 오랜 골을 메우려는 실험들이 한창이다.
'이쪽저쪽 작가들이 한데 모이면 물질과 반물질이 합쳐지는 듯한 폭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작은따옴표 안의 비유는 내가 아니라 미국 소설가 마이클 셰이본의 표현이다.
752쪽짜리 소설집 '안 그러면 아비규환'(틀)의 제작 후기에 실려 있다.
셰이본은 퓰리처상, 휴고상, 네뷸러상을 모두 수상하며 문단과 장르소설계 양쪽에서 인정받은 희귀한 존재다.
'지루한 순문학 대 가벼운 대중소설'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은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이 작가는 거기에 어지간히
짜증이 났나 보다. 대담하고 독창적인 편집으로 2000년대 초 미국 문학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독립출판사
맥스위니스의 편집장과 저녁을 먹다가 셰이본은 그런 불만을 토로한다.
"내가 문예지를 만든다면 양쪽 대세 작가들을 모아서 이렇게 저렇게 할 거야"라면서.
그러자 편집장 왈, "그냥 우리 잡지 한 호를 네가 만들어."
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지음/ 엄일녀 옮김/ 톨:문학동네/ 2012/ 731 p
843.08-ㅇ193ㅁ/ [정독]어문학족보실/ [강서]3층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안 그러면 아비규환'이다.
셰이본은 스티븐 킹, 닉 혼비, 닐 게이먼, 마이클 크라이튼 등 설명이 필요 없는 소설가
20명을 모았고, 그들에게 '오싹한 이야기'를 주문했다. 장르는 자유. 결과물은 흔한
마케팅 용어가 되어 버린 '융합'의 가치를 새삼 실감하게 해준다.
어느 소설집에 실려도 좋았을 수작들 가운데 릭 무디의 '앨버틴 노트'처럼 이런 기획 덕분에
작가가 쓰고 독자가 읽게 된 게 아닐까 싶은 작품이 섞여 있다. 개인적으로는 댄 숀의 '벌'이
가장 섬뜩했다. 이렇게 전에 몰랐던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도 이런 기획 앤솔러지(선집)에서 얻는 즐거움의 하나렷다.
콘셉트뿐 아니라 표지와 본문의 디자인까지 통통 튀는 책인데, 국내 번역서도 그런 요소들을 충실히 반영하려 애썼다.
책을 편집한 이수은 현 스윙밴드 출판사 대표는 "1950~1960년대 가판대 잡지 느낌을 추구한 원서의 레이아웃과
삽화를 적절히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 자신이 맥스위니스 출판사의 오랜 '덕후'여서 더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29/20200229002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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