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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일만 보도하라"… 은폐와 경시가 부른 재앙

바람아님 2020. 3. 14. 11:52

"유쾌한 일만 보도하라"… 은폐와 경시가 부른 재앙

(조선일보 2020.03.14 곽아람 기자)


1918~1920년, 전세계서 유행한 스페인독감으로 美 67만명 사망
당국은 사태 무시, 언론은 침묵… 의사 경고에도 퍼레이드 강행
"리더십 발휘해 질병 구체화해야… 사람들이 공포를 이겨낼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4/2020031400239.html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제니퍼 라이트 지음|이규원 옮김|산처럼|384쪽|2만원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주 해스컬의 의사 로링 마이너가 주간지 '퍼블릭 헬스 리포트'에

"질병이 유행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마이너는 초겨울부터 건강한 청년 수십 명이

'중증의 인플루엔자'에 걸려 죽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당국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2017)를 쓴 미국 칼럼니스트 제니퍼 라이트는 1918년에서

1920년까지 전 세계 인구 최대 5%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던 당시의 미국 상황을

다룬다. 독감은 군부대로 옮아가 장병들을 겨냥했지만, 언론은 침묵했다.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사기 진작을 위한 법이 통과됐다. 미국 정부에 관해 불충하거나 모독적이거나

악의적이거나 독설적인 표현을 발언, 인쇄, 집필, 혹은 출판하면 20년 동안 수감될 수 있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9월 초, 해군에서 유행했다. 9월 15일까지 600명의 군인이 입원했다.

그러나 당국은 사태를 은폐하고 위험을 경시했다.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9월 28일의 퍼레이드도 강행했다.

의사 하워드 앤더스가 퍼레이드의 위험성을 보도해 달라고 언론에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10월 1일, 필라델피아에서 117명이 독감으로 죽었다.

그런데도 10월 6일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질병 대신 유쾌한 일만 이야기하자"고 보도했다.

10월 10일엔 759명이 죽었다. 길거리에서 시체가 썩어갔다. 관(棺)의 수요가 급증해 가격도 급등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관을 훔치기 시작했다. 어린이 시체는 마카로니 상자에 틀어넣었다.

하지만 시카고에서는 보건국장이 "질병보다 공포가 더 치명적"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사기 진작에 방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달의 치사율은 15%에서 40%로 치솟았다. 스페인 독감으로 미국인만 약 67만5000명이 죽었다고 여겨진다.

4년 동안 지속된 남북전쟁 때의 사망자 수보다 많다.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미국 캔자스주 캠프 펀스턴에 설치된 구급병원의 광경. 3주간 이 병영에서 1100명이 독감에 걸려 38명이 죽었다.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미국 캔자스주 캠프 펀스턴에 설치된 구급병원의 광경.

3주간 이 병영에서 1100명이 독감에 걸려 38명이 죽었다. /산처럼


천연두, 결핵, 콜레라, 나병, 장티푸스 등 질병의 역사와 그에 대한 대처를 다룬 책에서 저자는 발랄하면서도

신랄한 문체로 "역병(疫病)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 것은 그를 대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역병이 돌면 놀랄 만큼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위의 죽음과 파멸을 최소화한다.

착하고 용감하며 최상의 인간 본성을 보여준다.

미신에 사로잡힌 미치광이처럼 행동하며 사망자 수를 늘리는 사람들도 있다."(10쪽)


나병 환자들이 격리된 하와이제도 몰로카이섬에 들어가 환자의 붕대를 갈아주고, 농사와 요리를 가르치다

감염돼 숨진 벨기에 출신 다미앵 신부(神父)는 '최상의 인간 본성'을 보여주는 예다.

저자는 "다미앵은 질병과 병자를 결코 혼동하지 않았다"면서 "그는 질병과 벌이는 전쟁에 힘을 보태기 위해

굳이 천재나 뛰어난 과학자나 의사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고 썼다.


이 책과 동시에 독일 출신 의사이자 역사학자 로날트 D. 게르슈테가 쓴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2019)도

국내에 출간됐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강희진 옮김미래의창|368쪽|1만7000원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페스트에 대한

서술이다. 림프절이 부어오르는 선(腺)페스트, 폐페스트, 패혈성 페스트 중

가장 치명적인 건 혈액을 통해 퍼지는 패혈성 페스트지만 지금 이 시점엔 폐페스트가

더 섬찟하게 여겨진다. "이른바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한 '비말 감염' 방식으로 전이되는

폐페스트는 체액을 통해 사람이 직접 다른 사람에게도 옮길 수 있다."(45쪽)



'비말 감염'이 의학용어가 아니라 일상어가 된 '역병의 시대', WHO(세계보건기구)가

마침내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을 선언한 이 주(週)를 마무리하며 제니퍼 라이트가 책에 인용한

미국 역사가 존 M. 배리의 '지독한 인플루엔자' 중 한 구절을 옮겨본다. 지금 우리 상황이 오버랩된다.

"당국자는 대중의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그 방법은 아무것도 왜곡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누군가를 조종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리더십을 발휘해 어떤 공포든 그 존재를 구체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읽을 거리 :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팬데믹, 나만 비켜가리란 보장은 없다
(조선일보 2020.03.14 우석훈 경제학자)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
저자: 네이선 울프/ 강주헌/ 김영사/2015/ 388 p.
517.6-ㅇ546ㅂ/ [정독]인사자실(2동2층)/ [강서]2층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4/2020031400258.html


http://blog.daum.net/jeongsimkim/40079





같이 읽을 거리 :


달콤한 '예스'보다 쓰디쓴 '노'를 삼켜라
(조선일보 2020.03.14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지동설 주장한 갈릴레오부터 美 도청행위 폭로한 스노든까지 세상 바꾼 반대자들 사례 담아
집단사고에 빠지면 조직 망가져… 반대 목소리 보호 방법 마련해야


반대의 놀라운 힘반대의 놀라운 힘
샬런 네메스 지음|신솔잎 옮김|청림출판|304쪽|1만6000원

http://blog.daum.net/jeongsimkim/40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