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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범위 '제로'… 기계문명 새로 쓴 정밀성의 아버지들

바람아님 2020. 5. 3. 07:54

(조선일보 2020.05.02 곽아람 기자)


볼트와 너트 표준화한 휘트워스… 자동차 부품 오차 범위 최소화해
롤스로이스 제작한 로이스 등 극도의 완벽함·정밀성 추구로 공학 기술 발달시킨 인물 탐구


'완벽주의자들'완벽주의자들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공경희 옮김|북라이프|480쪽|2만2000원


1815년 워털루전투에서 패한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쫓겨났다.

지질학자 출신 영국 저널리스트로,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을 소재로 한

'교수와 광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 책에서

"영국이 프랑스와의 전쟁을 우위로 끝낸 것은 정밀 공학을 바탕으로 한 영국 해군의

조선(造船) 프로그램 덕"이라고 말한다.

당시 영국 선박 핵심 부품 제작의 중심엔 기술자 헨리 모즐리(1771~1831)가 있었다.

모즐리는 정밀한 절삭 도구가 장착된 선반(旋盤)을 이용해 모양과 크기, 무게가 같은

금속 부품들을 대량으로 생산해 냈다. 현대 제조업의 궁극적인 주춧돌 같은 요소인

'호환 가능한 부품'은 정밀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 모즐리를 통해 탄생했다.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정밀성(precision)'이라는 개념이 '근대의 산물'이라 주장한다.

"정밀성이 현재부터 미래까지 인간 사회를 완전히 바꾸는 현상이 되려면 복제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화 이전에도 물론 정밀한 제품들은 있었지만 이는 오랜 시간과 엄청난 비용이 드는 장인 정신의 결과물이라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정밀성에는 시작이 있다. 정밀성은 세월을 거쳐 발전하고 성장하고 변화하고 진화해 왔다."


정밀성과 정확성(accuracy)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정밀성''미세' 및 '세부'와 연관돼 있지만, '정확성''주의와 주목'을 뜻하는 단어다.

"만약 당신이 뭔가를 정확하게 묘사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에 최대한 가깝게 묘사할 것이다.

정밀하게 묘사한다면, 세부가 그것의 핵심 가치가 아니더라도 최대한 세세하게 묘사한다."

따라서 정밀성은 허용 오차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한다.


금속 세공 공장에서 실린더 헤드를 제어 중인 기술자.
금속 세공 공장에서 실린더 헤드를 제어 중인 기술자. 사이먼 윈체스터는

"극도로 민감한 기계를 개발하고자 한 사람들이 있어 인류는 궁극의 정밀성을 토대로

중력파를 관측하는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책은 극도의 완벽함과 정밀성을 추구해 기계문명을 발전시킨 기술자와 공학자들,

특히 영국사 속 '정밀성의 아버지'들을 탐구한다.

모즐리가 '정밀성' 개념을 창시했다면, 조셉 휘트워스(1803~1887)는 이를 세부화하고 톱니를 더했다.

휘트워스 이전에 나사는 제각각이라 임의로 고른 나사가 임의로 고른 너트에 맞을 확률은 매우 낮았다.

나사의 솟아나온 부분 각도를 통일해 모든 나사를 표준화하자는 휘트워스의 아이디어가 산업화를 한 발짝 더 앞당긴다.


롤스로이스 창업자 헨리 로이스(1863~1933)와 미국 자동차왕 헨리 포드(1863~1947)도 정밀한 완벽주의자로 꼽는다.

"완벽함은 작은 것들에 있다"는 말을 남긴 로이스는 양쪽 크랭크축의 오차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여 최대한 완벽하게

균형을 맞춰 믿음직하고, 힘 좋고, 소음 없는 자동차를 만들었다.

'자동차의 절정' 롤스로이스는 극소수에게 정밀성을 제공했다. 반면 포드는 정밀함을 다수가 이용하게 하고 싶었다.

1908년 출시된 포드사 '모델 T'의 각 부품은 정확한 규격의 허용 오차에 맞춰져 더 이상 섬세하게 조절하지 않아도

서로 정확히 맞았다.


제트엔진, 라이카 렌즈, 반도체, 머리카락 굵기 이하 오차로 빛의 속도를 측정 가능한 미국의 레이저간섭중력파관측소

라이고(LIGO)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인류에게 날개를 달아준 기계문명의 바탕이 된 '정밀성'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면서도 테크놀로지 발달이 낳은 과도한 정밀성을 경계한다.

일본 시계회사 세이코는 1969년 쿼츠 디지털 손목시계를 도입하면서 장인들이 만드는 수제 시계 '그랜드 세이코' 생산을

중단했다가 10년 만에 재생산을 결정한다. 소비자들이 여전히 손으로 만든 시계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일화와 함께 저자는 묻는다.

"오늘날 기계적 정확성에 몰두하는 것이, 인간 상황의 다른 요소를 무가치하게 만들고 사라지게 하는 걸까?"

사람 손이 닿는 것들이 최소화되고, 첨단 기술을 이용한 '언택트' 문명이 대세가 된 '코로나 시대'에 곱씹어볼 만한

질문이다.  원제 The Perfectionists.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1/20200501023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