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4.25 장강명 소설가)
무신론자의 시대
장강명 소설가
최근 150년 동안 서구의 철학, 문화, 예술, 정치 운동을 832쪽짜리 책 한 권에 담아낸다고 치자.
어떤 키워드를 써야 그 모든 움직임을 다 엮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 2020년의 우리에게도 현재진행형인 주제는 뭘까?
박학다식의 대명사 같은 작가인 피터 왓슨은 그 열쇠 말로 '신의 죽음'을 내세웠다.
'무신론자의 시대'(책과함께)는 종교를 믿으라거나 믿지 말라고 강요하는 책이 아니다.
특정 종교에 대한 책도, 종교학 서적도 아니다.
니체 이후 서양의 사상가와 예술가, 운동가들이 '세계의 의미'를 붙잡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어떻게 도전하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설명하는 지성사다.
저자는 사실 그런 노력들이야말로 현대 문화의 핵심적 요소라고 풀이한다.
저자의 시야는 현상학과 실존주의에서 뉴웨이브와 사이키델릭에까지 이른다.
이 사조(思潮)와 유행들을 저자가 제공하는 독특한 렌즈를 통해 보면서 새로운 특징을 발견하고 본질을 다시 이해하는
즐거움이 짜릿하다. 책은 프로이트의 의의를 이전까지 종교가 독점했던 인간 내면을 생물학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데서 찾는다. 카프카의 작품을 대안 종교가 되려 하는 거대 담론 일체에 대한 거부로 읽는다.
무신론자의 시대 : 신의 죽음 이후 우리는 어떤 삶을 추구해왔는가
피터 왓슨 지음/ 정지인 옮김/ 책과함께/ 2016/ 831 p
204.21-ㅇ487ㅁ/ [정독]인사자실/ [강서]2층 자료실서고
현대 문화와 사상의 맥락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저자의 유려한 솜씨 덕분에 책은 뒤로 가면서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 된다. 그래서 이 시대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에 대한 희망과 따뜻한 공동체에 대한 답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종교도 과학도 여전히 불충분해 보이는 이때, 어떤 시도와 상상력이 필요할까?
책장을 덮은 뒤에도 깊은 여운이 남는다.
곳곳에서 교회 십자가와 점집을 찾을 수 있는 나라이지만, 종교적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책은 안 팔리는 곳이 한국이다.
류종필 책과함께 대표는 초판 수량을 놓고 '제목에 무신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벽돌 책이 얼마나 팔릴까' 하고
망설였다고 한다. 책은 류 대표의 예상을 뒤엎고 5개월 만에 1쇄가 다 팔렸다.
인터넷 서점들의 평을 보면 '피터 왓슨의 책이라면 무조건 본다'는 팬들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5/20200425002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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