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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39) 앙리 루소 '잠든 집시여인'

바람아님 2017. 11. 25. 19:36

(경향신문 2011. 09. 21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달빛 한 줌, 지팡이 하나

 
천국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보다 지옥에서 홀로 살기를 선택하겠다고 고백한 이는 소로였습니다.

소로는 월든 숲속에다 오두막 한 채를 짓고 스스로 밭을 일궈 먹으며 평생을 고독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폐렴에 걸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고독하게 세상을 떠났어도 나는 그가 불쌍하거나 안됐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고독이 불안하거나 무섭지 않은, 아니 고독이 ‘나’의 집인 현자였을 테니까요.

저 그림 앙리 루소의 ‘잠든 집시여인’을 보는데 왜 단순하고 담백하게 살다간 소로가 생각이 나는 걸까요? 


아마 보이는 것이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일 것입니다.

한 벌의 옷, 지팡이 하나, 만돌린 하나, 물병 하나! 신발도 없는 것이 그녀가 얼마나 가진 것이 없는지를 증명합니다.

그러나 소로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 그림은, 살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앙리 루소, ‘잠든 집시여인’, 1897년, 캔버스에 유채, 129.5×200.7㎝, 뉴욕 현대미술관

달빛 한줌, 이슬을 모으는 물병, 만돌린 소리와 내 속의 사자, 그녀의 삶의 동반자들입니다.

그것들을 보면 그녀의 단순한 삶이야말로 살아있는 삶이라 고백하게 됩니다.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삶이

왜 숨 막히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사는 데 강남의 집이 필요하고, 비싼 차가 필요하고, 인맥이 필요하고, 명품으로 도배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기름 낀 그 삶의 비만으로 인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너무 바빠서 바람소리를 듣지 못하고, 달빛을 느끼지 못하고, 나를 찾아 걸어 들어오는 야수를 지나칠지 모릅니다.

안락한 삶에 길들여진 우리는 불필요한 많은 것들에 의존해 살이 쪄 갇혀 있고, 길들여지지 않은 그녀는 아무것도 없지만

바람처럼 자유롭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인에게서 가난과 방랑의 흔적을 거둬내면 여인과 사자가 다시 보입니다. 다시 한 번 잘 보십시오.

하늘을 지붕 삼아 달빛 아래 잠들어 있는 여인의 표정을. 그녀의 머릿결과 옷의 무늬까지 한 방향으로 잘 정돈되어 있지요?

그녀의 잠이 편안한 단잠임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깨끗한 방, 깨끗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왜 그렇게 불면증에

익숙할까요? 바람을 막아 줄 방 한 칸 없는 저 여인은 저렇게 잘도 자는데.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9) 앙리 루소 ‘잠든 집시여인’그녀는 어디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방랑자지만 고독한 방랑이 자연스러운 인간 중의 인간입니다.

더구나 여인 옆에서 어슬렁거리는 사자의 행태를 보십시오.

저 사자는 위험한 사자가 아니라 지켜주는 사자입니다. 여인의 수호신 같습니다.

사자는 홀로 사는 일을 사랑하는 동물이지요? 혼자여도 우울하지 않고 바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재미있는 일이 없어도 심심하지 않을 수 있어야 사자가 지켜주는 인간이고, 사자 같은 인간이며,

고독을 사랑하는 인간입니다. 


루소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꿈결을 그려놓은 것 같습니다.

그의 꿈같은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환상이 필요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길지도 않은 그의 인생에서 5명의 아이들이 계속 세상을 떠나고,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다시 얻은 아내도 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악어들이 입을 벌리고 쫓아오는 것 같은 삶의 강을 건너면서 그가 믿게 된 것은 생은 꿈이고, 꿈임을 감추기 위해 고통이

찾아드는 거라는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한편에선 그림으로 고통을 견뎠고 다른 한편 고통 속에서 그림을 완성하는

행복을 느끼며 생이 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살아보면 산 게 없는 꿈같은 인생,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그 인생을 한명회 같은 지향성으로 살까요,

김삿갓 같은 지향성으로 살까요? 사실 저 그림에서 가장 눈이 갔던 것은 여인의 지팡이였습니다.

얼마나 소중했으면 잠든 와중에도 놓지 못하고 있을까요? 자면서도 놓지 못하는 소중한 것이 지팡이인 것으로 봐서

내일도 그녀의 삶은 지팡이가 필요한 고단한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단함은 스트레스가 되어 그녀의 삶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적이 아니라 만돌린을 연주하게 만드는 에너지일

것입니다. 지팡이가 인도하고 만돌린이 정화하는 길을 걸으며 그녀는 고독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해가리라 믿습니다.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경향신문(2011.1.02 ~ 2011.12.21)


< 명화를 철학적 시선으로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


(1) 반 에이크 ‘수태고지(경향신문 2011.01.02) 

(2) 클림트의 ‘다나에(2011.01.09)

(3)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아프로디테'(2011.01.16)

(4) 샤갈의 ‘거울’(1915)(011.01.23)

(5) 안토니오 카노바의 '에로스와 푸시케'(2011.01.30)


(6) 루벤스 '잠든 에로스를 지켜보는 푸시케'(2011.02.06 20)

(7)수잔 발라동 '아담과 이브'(2011.02.13)

(8) 렘브란트 ‘탕자의 귀환'(2011.02.20)

(9) 루벤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2011.02.27)

(10) 엘리후 베더의 ‘스핑크스의 질문자'(2011.03.06)


(11) 폴 고갱 ‘신의 아이'(2011. 03. 13)

(12) 고흐 ‘슬픔'(2011. 03. 20)

(13)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2011. 03. 27)

(14) 밀레의 만종(2011. 04. 03)

(15) 조지 클라우센 '들판의 작은 꽃'(2011. 04. 10)


(16) 렘브란트, 십자가에서 내려짐(2011. 04. 17)

(17)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2011. 04. 24)

(18)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2011. 05. 01)

(19)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2011. 05. 08)

(20)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2011. 05. 15)


(21) 워터하우스의 아리아드네(2011. 05. 22)

(22) 티치아노의 ‘유디트’(2011. 05. 29 )

(23)이 시대의 오르페우스, 임재범(2011. 06. 05)

(24) 모로의 ‘환영’(2011. 06. 12)

(25)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2011. 06. 19)


(26)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는 카미유’(2011. 06. 26)

(28) 조르주 로슈그로스의 ‘꽃밭의 기사’(2011. 07. 03)

(29)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2011. 07. 10)

(30) 고흐의 ‘해바라기’(2011. 07. 17 18:10)


(31) 모네의 수련 연못 (2011. 07. 24)

(32) 르누아르의 ‘빨래하는 여인들’ (2011. 07. 31)

(34)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2011. 08. 10)

(35) 오처드슨의 ‘아기도련님’  (2011. 08. 17 )


(36) 렘브란트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  (2011. 08. 24 )

(36) 마티스의 ‘원무’ (2011. 09. 07)

(38) 앙리루소 ‘뱀을 부리는 여자’ (2011. 09. 14 21:17)

(39) 앙리 루소 ‘잠든 집시여인  (2011. 09. 21)


(40)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2011. 09. 2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81932525&code=990000&s_code=ao080


(41) 폴 세잔 ‘수욕도’(2011. 10. 0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051853345


(42) 번 존스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2011. 10. 1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122100265


(43) 쿠르베 ‘상처 입은 남자’(2011. 10. 1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191946195


(44)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2011. 10. 2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262142355


(45) 밀레의 ‘접붙이는 사람’(2011. 11. 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021842215


(46) 뭉크의 ‘절규’(2011. 11. 09 21:0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092103325


(47) 조지 프레더릭 왓츠의 ‘희망’(2011. 11. 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162051265


(48) 샤갈의 ‘떨기나무 앞의 모세’(2011. 11. 3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302103105


(49) 고갱의 ‘과일을 들고 있는 여인’(2011. 12. 0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2072102435


(50) 브뤼겔 ‘베들레헴의 인구조사'(2011.12.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21205713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