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39

“너만은 믿었는데!” 30년 단짝친구의 돌발행동?…곧장 갈라선 사연[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헤럴드경제 2024. 4. 20. 00:11 [작품편 101. 폴 세잔] 천 위에 올려진 사과 살인 사과와 오렌지 "에밀 졸라, 이 나쁜 자식!" 폴 세잔이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는 좁은 작업실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세잔은 손에 든 책을 구길 듯 꽉 쥐었다. 그것은 그의 단짝이자 잘나가는 작가, 에밀 졸라가 쓴 소설 〈작품(The Masterpiece)〉이었다. 세잔도 처음에는 졸라가 보낸 이 책을 반갑게 펼쳤다. 그런데, 종이를 넘길수록 기분이 묘해졌다. 책 속 주인공은 가상 인물 클로드 랑티에였다. 나름 안목과 확고한 철학이 있지만, 세상의 인정을 좀처럼 받지 못하는 비운의 화가였다. 랑티에는 그림을 그릴수록 놀림만 받기 일쑤였다. 야심차게 전시회에 나섰지만, 이 또한 결과적으로 조롱만 ..

억눌린 분노의 상징[이은화의 미술시간]〈315〉

동아일보 2024. 4. 17. 23:30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필립스 컬렉션은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관이다. 1921년 미술품 컬렉터였던 덩컨 필립스가 설립했다. 인상파 이후 유럽 현대미술을 가장 먼저 미국에 소개한 이곳은 현재 5000점이 넘는 소장품을 자랑하고 있다. 그중 필립스가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칭송한 작품이 있는데, 바로 오노레 도미에의 ‘봉기’(1848년경·사진)다. 부호 컬렉터는 어째서 민중 봉기를 그린 그림에 매료됐을까? 필립스는 피츠버그의 대부호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업보다는 가문의 돈을 잘 쓰는 데 진심이었던 터라 열정적인 미술품 수집가가 되었다. 30대 초 아버지와 형을 차례로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 그는 자택 안에 가족을 기리는 필립스 메모리얼 갤러리를 설립했다. 화가 마저리 ..

아내 버리고 29살 연하와 밀애…1000억 훌쩍 ‘전성기 작품’ 수두룩 [0.1초 그 사이]

헤럴드경제 2024. 4. 6. 23:59 수정 2024. 4. 7. 00:41 ⑦ 파블로 피카소 첫 아내 올가·전성기 이끈 마리… 끝나지 않는 여성편력이 작품으로 [0.1초 그 사이]는 역대급 몸값을 자랑하는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한 작품이 명성을 얻게 되는 데는 작품성을 넘어선 그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안목이 뛰어난 컬렉터나 큐레이터의 손을 거치는 것은 물론 스캔들, 법적 분쟁, 도난 사건, 심지어 예술계를 뒤흔든 저항까지…. 작품의 명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이처럼 다양합니다. 그리고 평판 높은 이런 미술품들은 단 0.1초 차이로 행방이 갈라지게 되죠. ‘찰나의 순간’으로 승부가 나뉘는 치열한 미술시장에서 선택받은 그림들, 그 안에 얽힌 속사정을 들려드립니다. “할아버지의 걸..

“여보, 이제 그만좀” 5살 연하 아내 졸졸 따라다닌 방구석男, 무슨 생각인가 했더니[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빌헬름 하메르스회 편]

헤럴드경제 2024. 4. 6. 00:12 [작품편 99. 빌헬름 하메르스회] 휴식 책상 앞에 있는 여인 이젤이 있는 인테리어 그녀는 겨우 마음먹은 대청소를 끝낸 걸까. 간만에 텃밭 한 바퀴를 돌며 잡초를 뽑고 들어온 것일까. 그게 아니면, 종종 참석해야 하는 모임에서 힘을 다 빼고 돌아온 것일까. 그녀를 지치게 한 게 뭐였든, 당장은 해방의 순간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속 편히 머리카락을 묶어 올렸다. 옷 또한 평소 쉴 때나 입던 투박한 블라우스와 치마로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 손에 잡히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상체를 등받이에 바짝 기댄 채, 이것만으로는 아쉬워 오른팔을 그 모서리에 살짝 얹었다. "이제 좀 살겠어…." 그녀의 혼잣말이 들리는 듯하다. 그간 할 만큼 했으니, 이 순간만큼은 멍하게..

“저 사람이 내 아빠예요?” 도끼눈 뜬 막내딸…‘이 가족’ 가슴 아픈 사연[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일리야 레핀 편]

헤럴드경제 2024. 3. 30. 00:11 [작품편 98. 일리야 레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이반 4세와 그의 아들 신병 배웅 그날은 기분 좋은 휴일이었다. 소파에 등을 기댄 노인은 조용히 콧노래를 불렀다. 피아노에 손을 올린 여인은 그 음에 맞춰 동요부터 민요, 유행가까지 막힘없이 연주했다. 아이들은 발끝에 닿는 햇빛을 문지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카메라가 있다면 그대로 찰칵 찍은 뒤 액자에 모셔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부엌에선 앞치마를 두른 하녀가 경쾌하게 도마를 두드렸다. 이어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음식이 다 된 모양이었다. 이들은 식사 후 나들이를 갈 생각이었다.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따뜻한 홍차를 마실 요량이었다. "사모님, 지금…." 시작은 하녀의 조심스러운 노크였다..

[미술 다시보기] 불안한 여인의 초상

서울경제 2024. 3. 28. 06:00 ‘흰 담비를 안은 여인’은 서구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다. 1490년께 제작된 이 그림은 매우 독특한 구성을 지닌 초상화다. 그림 속 주인공은 화면 한쪽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반신이 향한 곳과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모습이 왠지 불안해보인다. 게다가 그는 애완동물로는 적합해보이지 않는 흰 담비를 안고 있는데 이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유사한 손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이 그림 속 주인공은 체칠리아 갈레라니다. 젊고 아름다웠던 그는 밀라노 공국의 수장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과 연인 사이였다. 하지만 1491년 스포르차 공작이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의 여성과 결혼하며 버..

‘망작’이라더니 1초에 1억씩 뛰었다…당신이 모를 수 있는 비밀이 [0.1초 그 사이]

헤럴드경제 2024. 3. 23. 23:59 수정 2024. 3. 24. 00:26 ⑥ 에드바르 뭉크 ‘절규’ 나는 두 친구와 산책을 나갔다. 해가 질 무렵이었고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죽을 것 같은 피로를 느낀 나는, 멈춰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불의 혓바닥과 핏물이 검푸른 협만과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나는 혼자서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때 나는 거대하고 무한한 자연의 절규를 들었다. 극도의 불안에 떨었던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 이 글은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절규(The Scream)’와 함께 그가 남긴 일기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서리를 치며 괴로워하는 그림 속 남자의 고통이 느껴지시나요. 그런데..

“아! 앞이 안 보인다” 인기 거장의 위기…수술도 차일피일 미룬 이유[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헤럴드경제 2024. 3. 23. 00:12 [97. 클로드 모네] 언젠가부터 눈이 침침했다. 하늘이 차츰 노랗게 보였다. 수풀 또한 점점 불그스름한 모습을 띠었다. 있지도 않은 안개가 떠다니는 듯도 했다. 1912년 어느 날, 이러한 이상함을 느낀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비볐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붓을 놓고 며칠 쉬면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눈은 계속 불편했다. 정도가 심할 때는 아예 온 세상이 뿌옇게 보이기도 했다. 모네는 결국 안과를 찾았다. "내 눈이 왜 이렇소?" 의사에게 물었다. 약만 며칠 먹으면 낫는다는 말을 바랐지만, 의사의 표정은 사뭇 심각했다. "모네 선생님.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대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