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42

“이 미녀는 왜 이 꼴로?” 배위 사망 미스터리, 아무도 몰랐던 사연[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편]

헤럴드경제 2024. 2. 24. 00:21 [작품편 93.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샬롯의 여인 성 에우랄리아 에코와 나르키소스 일레인은 노래를 불렀다. 그건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사랑 노래였다. 그녀는 음에 맞춰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식의 가사를 가만히 곱씹었다. 그러다 보면 이 갑갑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너는 네 눈으로 바깥세상을 보면 죽으리라.' 일레인은 수년 전에 걸린 신의 저주를 잊지 못했다. 그녀가 잘못한 건 없었다. 그저 신이 질투할 만큼 예뻐지고 있다는 게 죄라면 죄였다. 일레인은 신의 음성을 들은 그날 이후 지금껏 햇빛을 보지 못했다. 아서왕이 사는 성(城) 카멜롯 근처의 샬롯섬 탑에 갇혀있었다. 일레인은 이곳에서 홀로 천을 짜며 살았다. 물밀..

여성 화가의 도전[이은화의 미술시간]〈307〉

동아일보 2024. 2. 21. 23:33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가 그린 ‘두 제자와 함께 있는 자화상’(1785년·사진)은 18세기 유럽 여성 미술교육에 대해 말해주는 중요한 그림이다. 여성은 미술교육을 받을 수도 화가가 될 수도 없던 시대에, 라비유기아르는 여성 최초로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스튜디오를 루브르 안에 열었고, 왕립 미술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1783년 5월 31일, 아카데미는 투표를 통해 라비유기아르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가였던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도 같은 날 회원으로 선출됐다. 두 여성의 입회에 분노한 남자 회원들은 이들의 작품은 물론 인격까지 모독하고 폄훼했다. 급기야 여성할당제를 만들어 여성 회원 수를 당시 여성 수와 동일한 4..

미완성의 이유[이은화의 미술시간]〈306〉

동아일보 2024. 2. 14. 23:30 길버트 스튜어트는 19세기 미국 최고의 초상화가였다. 미국 첫 대통령 6인을 포함해 약 1000명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런데 그 많은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건 ‘아테네움’(1796년·사진)이라 불리는 미완성 초상화다. 어째서 미완성 그림이 그의 대표작이 될 수 있었을까? 1794년 정치인 존 제이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성공한 후, 그의 소개로 이듬해 말 드디어 대통령이 스튜어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림 속 워싱턴은 64세로 타계하기 3년 전 모습이다. 집권 8년 차에 들어선 대통령은 전쟁 영웅도 권력자의 모습도 아니다. 스튜어트는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미완성 원본을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 아테네움이란 제목은 그의 사후 그림이 보스턴 아테네움 미술관으로..

[K스토리] 영상으로 만나는 '미술로 보는 세상' ⑦ 신윤복의 에로티시즘과 엿보기

연합뉴스 2024. 2. 11. 22:24 "조선 후기 대표적 화가인 신윤복(申潤福)은 늘 금기에 도전하는 혁신적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시대 제도권 안에서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화가는, 그것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린 화가는 신윤복이 유일합니다." '미술로 보는 세상' 칼럼 저자 연합뉴스 도광환 기자는 신윤복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도 기자는 이어 "신윤복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단오풍정'은 단옷날 계곡에서 여성들이 목욕하거나 머리를 만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며 "은밀한 모습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린 그림은 없다"고 말했다. 도 기자에 따르면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그림의 왼쪽 상단 나무 아래를 보면 동자승 혹은 청년 스님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성이 계곡을 훔쳐보고 있는 장면이 있다. 더욱..

1분에 100억씩 값오른 ‘최고가 누드화’…위작 많아서라고? [0.1초 그 사이]

헤럴드경제 2024. 2. 11. 00:01 수정 2024. 2. 11. 01:31 ②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누워있는 나부’ 1920년 1월, 누추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 파리의 한 자선병원. 살아 생전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가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살을 에는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낡디낡은 작업실에서 이웃의 발견으로 병원에 옮겨진 지 불과 이틀 만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술과 마약에 찌든 채 피를 토하며,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의 연인은 만삭의 몸으로 창밖으로 투신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95년 뒤, 믿을 수 없는 반전이 벌어집니다. 가난한 화가가 죽기 2년 전에 그린 그림이 세상에서 가장..

‘초호화 휴양지’ 화산폭발, 2000명 파묻혀 죽었다…그 시절 폼페이서 무슨 일이[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카를 브률로프 편]

헤럴드경제 2024. 2. 10. 00:22 [작품편 : 91. 카를 브률로프] 폼페이 최후의 날 이탈리아의 아침 자화상 서기 79년, 8월24일. 찬란한 도시가 통째로 화산재에 파묻혔다. 폼페이 사람들은 때마침 불의 신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모두가 포룸(forum·광장) 일대에 모여 웃고, 떠들고, 노래를 불렀다. 휴양차 이곳에 온 로마 귀족들은 스타비안 목욕탕(Stabian baths)에서 따뜻하게 몸을 녹였다. 아이들은 연극과 검투사 경기를 훔쳐보기 위해 난전 일대를 쏘다녔다. 베수비오 화산이 뿜는 김은 확실히 심상치 않았다. 땅울림 뒤 잔기침하듯 거듭 움찔하던 화산 봉우리는 끝내 모든 걸 토해내듯 검은 연기를 뿜기 시작했다..... 화산은 끝내 화약 수백..

혼례 올린 신부, 설빔 입은 아이…조선을 사랑한 英여성화가

중앙일보 2024. 2. 9. 05:00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엔 '송영달 개인 문고'가 있다. 미국에서 행정학 교수로 이스트캐롤라이나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던 송영달(90) 교수가 기증한 한국 관련 서양 고서(古書) 모음이다. 송 교수는 틈날 때마다 영미권 서점을 다니며 구한말 한반도의 모습이 서술된 영어 서적을 수집했다. 40여 년에 걸친 수집 과정에서 송 교수가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 인물이 있으니,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라는 영국 화가다. 20세기 초 처음엔 일본에, 다음엔 당시 조선을 방문해 작품활동을 했던 여성 화가다. 그는 20세기 한반도를 금강산부터 한양까지 여행하며 우리네 삶을 화폭에 담아냈다. 조선의 3ㆍ1 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 크리스마스 실을 세 차례 그린..

바보처럼 웃다 보면[이은화의 미술시간]〈305〉

동아일보 2024. 2. 7. 23:30 당나귀 귀가 달린 후드 상의를 입은 남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왼손은 얼굴 반쪽을 가렸고, 오른손은 안경을 들었다. 왼팔로는 얼굴 형상이 달린 지팡이를 안았다. 옷은 겨자색과 붉은색의 이중 색이고 머리에 쓴 후드 중앙에는 공룡처럼 돌기가 달렸다. 이 우스꽝스러운 복장의 남자는 누구고 그는 왜 이리 웃고 있는 걸까? 이 그림의 제목은 ‘웃는 바보’(1500년경·사진), 서명은 없지만 15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했던 화가 야코프 코르넬리스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만 보면 지능이 떨어지는 사내를 그린 것 같지만 차림새는 광대 복장이다.....가장 눈길을 끄는 건 얼굴을 가린 손과 그의 웃음이다......네덜란드 속담에서 ‘손가락 사이로 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