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42

[미술 다시보기] 불안한 여인의 초상

서울경제 2024. 3. 28. 06:00 ‘흰 담비를 안은 여인’은 서구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다. 1490년께 제작된 이 그림은 매우 독특한 구성을 지닌 초상화다. 그림 속 주인공은 화면 한쪽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반신이 향한 곳과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모습이 왠지 불안해보인다. 게다가 그는 애완동물로는 적합해보이지 않는 흰 담비를 안고 있는데 이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유사한 손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이 그림 속 주인공은 체칠리아 갈레라니다. 젊고 아름다웠던 그는 밀라노 공국의 수장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과 연인 사이였다. 하지만 1491년 스포르차 공작이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의 여성과 결혼하며 버..

‘망작’이라더니 1초에 1억씩 뛰었다…당신이 모를 수 있는 비밀이 [0.1초 그 사이]

헤럴드경제 2024. 3. 23. 23:59 수정 2024. 3. 24. 00:26 ⑥ 에드바르 뭉크 ‘절규’ 나는 두 친구와 산책을 나갔다. 해가 질 무렵이었고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죽을 것 같은 피로를 느낀 나는, 멈춰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불의 혓바닥과 핏물이 검푸른 협만과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나는 혼자서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때 나는 거대하고 무한한 자연의 절규를 들었다. 극도의 불안에 떨었던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 이 글은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절규(The Scream)’와 함께 그가 남긴 일기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서리를 치며 괴로워하는 그림 속 남자의 고통이 느껴지시나요. 그런데..

“아! 앞이 안 보인다” 인기 거장의 위기…수술도 차일피일 미룬 이유[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헤럴드경제 2024. 3. 23. 00:12 [97. 클로드 모네] 언젠가부터 눈이 침침했다. 하늘이 차츰 노랗게 보였다. 수풀 또한 점점 불그스름한 모습을 띠었다. 있지도 않은 안개가 떠다니는 듯도 했다. 1912년 어느 날, 이러한 이상함을 느낀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비볐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붓을 놓고 며칠 쉬면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눈은 계속 불편했다. 정도가 심할 때는 아예 온 세상이 뿌옇게 보이기도 했다. 모네는 결국 안과를 찾았다. "내 눈이 왜 이렇소?" 의사에게 물었다. 약만 며칠 먹으면 낫는다는 말을 바랐지만, 의사의 표정은 사뭇 심각했다. "모네 선생님.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대체 ..

역대급 인기男, ‘시속 120km 음주운전’ 즉사…이마저도 신화가 됐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헤럴드경제 2024. 3. 16. 00:11 [96. 잭슨 폴록] No. 17A 벽화 심연 '잭슨 폴록, 그는 미국에서 현존하는 화가 중 가장 위대한가?' 1949년 8월8일, 미국의 유력 잡지 라이프(Life)는 지면에 이런 기사를 썼다. 그렇게 서른일곱 살의 화가를 한껏 치켜세웠다. 이 매체는 글과 함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의 전신사진도 실었다. 분량도 네 페이지나 할애했다. 한 예술가에 이토록 공을 들인 건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잡지 속 폴록의 인상은 매서웠다. 날카로운 눈과 퉁명스러운 표정, 탄탄한 체형, 팔짱을 낀 채 다리도 꼬고 있는 자세는 반항아의 표본 같았다. 근육질 마초 내지 카우보이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라이프는 폴록의 사진 옆에..

예술로 승화된 뭉크 가족의 비극 [으른들의 미술사]

서울신문 2024. 3. 7. 08:01 서울신문사는 올해 창간 120주년을 맞이해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 전시를 오는 5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올해는 또한 뭉크가 사망한 지 80주기를 맞이하는 해다. ‘으른들의 미술사’는 뭉크의 예술세계를 돌아보며 뭉크의 삶, 사랑, 예술, 죽음의 의미를 돌아본다.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에는 뭉크 빵집, 뭉크 호텔, 뭉크 커피숍 등 온통 뭉크로 도배되어 있다. 뭉크는 오슬로, 더 나아가 노르웨이 국민 화가다. 물론 현재 뭉크에 대한 평가는 노르웨이를 넘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화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뭉크 예술에서 어떤 점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21] 샤갈의 마을

조선일보 2024. 3. 5. 03:04 한때 마르크 샤갈(Marc Chagall·1887~1985)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진짜 있는 줄 알았다. 2000년대 초까지 서울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에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가 성업했기 때문이다. 실내에는 여지없이 흰 염소와 초록색 얼굴의 남자가 마주 보는 샤갈의 그림이 벽 하나를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염소의 머릿속에는 염소 젖을 짜는 여인이 있고, 농부의 뒤를 따라가면 자그마한 집들 앞에 선 여인이 중력을 잃은 듯 거꾸로 떠 있다. 빨간색과 그 위에 밀가루를 뿌린 듯 핑크색이 어우러진 공간이 몽환적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눈이 내리지는 않는다. 이 그림은 ‘나와 마을’이다. 샤갈은 지금의 벨라루스, 당시 제정 러시..

18세에 낳은 사생아는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母子의 기구한 사연[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모리스 위트릴로 편]

헤럴드경제 2024. 3. 2. 00:21 [작품편 94. 모리스 위트릴로(+수잔 발라동)] 클리냥쿠르의 교회 코팽의 막다른 골목 노트르담 성당 누군가는 그가 강변에서, 누군가는 그가 교회와 병원 앞에서 정신없이 무언가 그리는 걸 본 기억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는 그가 악취 가득한 쓰레기장을 옆에 둔 채 또 그러고 있는 것을 똑똑히 봤다는 이도 있었다. 이들이 한 말은 다 사실이었다.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Valadon·1883~1955)는 당시 프랑스 파리의 모든 장소에서 볼 수 있었다. 걸인 행색의 그는 붓과 연필, 종이를 든 채 파리 곳곳을 누볐다. 거기가 어디든 마음에 들면 망설임 없이 자리를 깔았다. 그러고는 눈앞 장면을 화폭에 옮겨담기에 무섭도록 집중했다. 사람들은 정처 없이 떠돌며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20] 고양이들의 왕

조선일보 2024. 2. 27. 03:03 화가 발튀스(Balthus, Balthazar Klossowski de Rola·1908~2001)는 프로이센 출신의 유복한 부모 아래 파리에서 태어났다. 92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평생 생일은 스물두 번뿐이었다. 4년에 한 번 오는 2월 29일에 태어났는데, 그나마 2000년은 윤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 태어나서 그런지 그는 어릴 때부터 특별한 예술적 재능이 있었다. 열두 살에 길고양이를 돌보다가 잃어버려 찾으러 나섰다가 겪은 사연을 그림 40장으로 그렸는데,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 표현력에 감탄한 나머지 직접 서문을 쓰고 책으로 출판했을 정도다. 성인이 된 뒤로도 발튀스는 유난한 애묘인(愛猫人)이었다. 늘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았고 당연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