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2024. 3. 23. 23:59 수정 2024. 3. 24. 00:26
⑥ 에드바르 뭉크 ‘절규’
나는 두 친구와 산책을 나갔다. 해가 질 무렵이었고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죽을 것 같은 피로를 느낀 나는, 멈춰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불의 혓바닥과 핏물이 검푸른 협만과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나는 혼자서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때 나는 거대하고 무한한 자연의 절규를 들었다.
극도의 불안에 떨었던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 이 글은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절규(The Scream)’와 함께 그가 남긴 일기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서리를 치며 괴로워하는 그림 속 남자의 고통이 느껴지시나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손으로 양볼을 감싸고 있는 게 아닙니다.손으로 두 귀를 막고 있는 겁니다. 그의 일기에서도 절규는 ‘보았다’가 아닌 ‘들었다’라고 표현돼 있죠. 그림을 조금 더 자세히 볼까요. 시뻘건 핏빛으로 번진 강렬한 자연의 절규가 온몸을 관통하는 것 마냥 남자의 눈, 코, 입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얼굴은 왜곡됐고, 몸은 비틀렸습니다. 네, 이 그림은 멈추지 않는 자연의 비명에 귀 막으며 몸서리치는 뭉크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그의 나이 서른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그림이 처음 공개됐을 때까지만 해도 “진짜 미친 사람이 그린 망작이다”, “악마의 하수인”,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서 그림을 못 그리게 만들어야 한다” 등 뭉크는 거센 비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100여 년이 지난 뒤, 세상 사람들은 이 그림을 정반대로 평가합니다. 뭉크의 절규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의 걸작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Nude, Green Leaves and Bust)’을 누르고 당시 미술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게 되거든요. 그것도 유화가 아닌 파스텔로 그린 버전이 말입니다.
https://v.daum.net/v/20240323235941000
‘망작’이라더니 1초에 1억씩 뛰었다…당신이 모를 수 있는 비밀이 [0.1초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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