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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방역정권의 정신구조를 묻는다

중앙일보 2021.01.04 00:31 적수를 호명해 박멸하는 방역정권 비판적 생체지식, 민주·분배 절대화 군부와 민주정권 다 관념론 신봉자 대륙사상의 하수인이 되고 싶은가 뒤죽박죽이었다. 정권의 전방위적 싸움이 코로나와 가세해 일상을 들쑤셨다. 2020년이 그렇게 가고 신생의 해가 솟았다. 시간에 마디를 두는 것은 혼란을 묻고 가슴 벅찬 개활지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힘든 세월이었다.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 갇혔다. 이중의 벽이다. 코로나가 명령한 동선 금압의 벽과 집권세력이 강박한 절대이념의 벽. 두 벽의 공통점은 바이러스 박멸, 곧 방역(防疫)이다. 3년 반이 경과한 요즘 현 정권은 ‘방역정권’이란 생각이 맴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961076 [송호근 칼럼] ..

[송호근 칼럼] K-구재는 어디에?

중앙일보 2020.12.21 00:55 빼앗긴 일 년에 빼앗길 일 년 예약 국민의 절반이 스러진 무덤에 꽂는 정의의 깃발이 무슨 소용 있으랴 국가적 재난 ‘K-구재’로 전환해야 나는 이즘 확신한다. 더 무서운 현실이 대기 중임을. 일 년이면 끝날 거라는 낙관적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현대과학은 무력했다. 나노 몸통에 돌기를 두른 코로나 바이러스는 과학의 담장을 마음껏 뛰어넘었고, 초연결 문명의 급소를 공격했다. 일 년을 빼앗겨 지칠 대로 지친 세모(歲暮)에 다시 빼앗길 일 년을 예약해야 하는 시대의 운명은 처참하다. 내년 3월이면 세계 확진자 1억 명, 사망자 2백만 명에 근접한다. 1919년 스페인독감 이후 세계가 뽐낸 과학은 확진자 규모를 5분의1밖에 줄이지 못했다. 인류는 저주를 받았다. htt..

[송호근 칼럼] 최종병기, 사약을 받을까?

중앙일보 2020.12.07 00:51 검찰개혁 격투기로 아수라장 한국 추장관 언행이 개혁명분 까먹어 윤총장 칼을 받아야 후한 없는데 국민의 최종병기에 사약 내릴까 그가 오던 날, 대통령의 애정 어린 미소를 기억한다. 그가 오던 날, 검찰개혁의 오랜 꿈이 이뤄진다던 민주당 의원들의 환호성을 기억한다. 선거법, 공수처법, 정부예산안을 두고 6개월을 허비하지 않았던가. 국회 문턱을 못 넘은 법안들은 대체로 대통령의 행정명령권으로 돌파하던 차였다. 마침 21대 총선이 천금 같은 출구를 뚫어줬다. 여기에 적폐청산을 진두지휘할 장수를 모셨으니 ‘20년 집권’ 같은 당찬 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그런데 정권의 기대는 한 달도 못 갔다. 총장의 칼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다. 눈치가 없었거나, 여권이 비난하듯 정치..

[송호근 칼럼] 수능이 위험하다

중앙일보 2020.11.23. 00:51 세계 최고의 입시공화국, 한국 팬데믹 3차 유행과 국가 대사 49만 명 청소년을 밀어 넣는가? 취소 혹은 강행, 정치결단이 절실 세계 최고의 입시공화국, 대한민국. 어지간한 정책은 잦은 정권교체로 폐지되거나 단명에 그쳤지만, 입시 하나만큼은 고목(古木)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입신출세의 길목마다 설치된 시험의 장벽은 이웃나라 중국, 일본과 비할 수 없이 단단하다. 한국에 태어난 이상 어쨌든 뛰어넘어야 한다. 고위관료를 시험으로 선발해온 나라는 드물다. 대기업 좁은 문에도 서류심사, 적성시험, 심층 면접시험이 부비트랩처럼 설치돼 있다. 잘 못 건드리면 인생이 산산조각난다. 실패의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꿈에 나타날 정도다. 온 국민이 식은땀을 흘린 대가..

[송호근 칼럼] 두 중국(衆國)으로 갈라선 합중국

중앙일보 2020.11.09 00:33| OK목장의 결투같은 미국 대선 망가진 민주주의, 회복 가능할까 치솟는 불평등이 민주주의의 적 우울한 전망, 우리를 돌아보게 해 성조기가 불탔다. IS대원이 아니다. 성난 미국 시민의 손에 의해, 유색인종과 미국에 빌붙는 모든 나라에 장벽을 치라는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해. 2차 대전 이오지마 전투에서 3만 명 사상자 투혼을 기리려 미해병대가 수리바치산 정상에 꽂은 그 성조기였다. 6·25 당시 중공군에 밀려 퇴각하던 장전호 병사들을 혹한에서 막아주던 성조기, 극한 대립으로 치닫다가도 애국의 눈물로 합중(合衆)을 일궈내던 그 성조기였다. 합중국은 두 중국(衆國)으로 갈렸다. 민주의 나라와 공화의 나라로, 자성(自醒)의 나라와 폭력의 나라로. https://news.j..

[송호근 칼럼] 안정세라니까요!

중앙일보 2020.10.26. 00:42 촛불광장에서 탄생한 정권의 독주 흠결 제로 결벽증은 정권 중 으뜸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최후 보루 정권의 무적 행진, 사란은 작란될 것 조선은 인민의 머리를 지배했던 지식국가였다. 500년 통치에 인민봉기나 민란이 없는 나라는 드물지만 조선은 예외였다. 19세기 후반, 드디어 민란이 발생했다. 1862년, 나무꾼 집단인 초군과 빈농이 주도한 진주민란에 신흥부자와 몰락양반이 합세했다. 관아와 사족들의 집이 불탔다. 조정은 사간원 정언을 지낸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했다. 직언으로 명망이 높은 그가 사태를 왜곡할 리 없었다. 조정에 장계(狀啓)를 올렸다. “진실로 그 이유를 따져보면, 탐학관원과 사족들이 결탁해서 과도한 세금을 부당 징수한 까닭입니다. 묘당이 품처하게 ..

[송호근 칼럼] 언택트시대의 놀이터, 트로트

중앙일보 2020.10.12. 00:33 트로트가 언택트 시대 심신 달래 백성의 음이 흥겨운 곡조가 되는 치세지음이 훈민정음 창제 본뜻 차벽에 막힌 광화문 어찌 보실까 내가 트로트를 흥얼거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눈물 짜는 노래, 못다 한 사랑을 달래는 즉흥적 가락, 트로트. 가공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를 그냥 흘려보내는 뽕짝이 팝송으로 단련된 세대에겐 먼 곳의 북소리였을 뿐이다. 고령층을 제외하곤 지금의 5060은 청춘스타 클리프 리챠드, 애상의 연인 스키터 데이비스의 노래로 음악세계의 문을 열었다. 가끔은 피터 폴 앤 메리의 반전노래를 따라 부르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절창에 흠뻑 젖기도 했다. 길거리 선술집에서 터져 나오는 ‘번지 없는 주막’은 소음, 또는 기껏해야 취기에 얹는 부모세대의 인생 넋두리..

[송호근 칼럼] 청명한 하늘에 마음은 먹구름

중앙일보 2020.09.28 00:51 코로나와 정쟁에 시달린 심신을 은은한 달빛에 위로받고 싶은 추석 진의가 민심 닿지 못하면 무민 통치 허물이 재앙을 부를까 따져볼 일 예로부터 민족 사명절(四名節)은 설, 단오, 추석, 동지, 그중 으뜸이 추석이었다. 여름의 땡볕과 산골 물소리가 잦아들면 산천초목에 산고(産苦)의 결실이 저마다 색깔을 드러내는 절기. 폭풍과 폭우에 시달린 기억이 곡식 낱알에 스며들어 고된 노동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은근히 일러주는 추석의 달빛을 누가 외면할 수 있으랴. 조상 묘소에 머리를 조아려 묵언의 위로라도 받고 싶은데 마스크 쓴 얼굴로 헷갈리게 하는 것은 불경죄일 터. 게다가 “불효자는 ‘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만류하는 시국이니 고향길을 나설 수도 없다. 이번 추석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