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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6] 늑대와 빨간 모자

조선일보 2024. 4. 17. 03:01 작은 빨간 모자는 괴상하게 모자를 푹 내려쓰고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귀가 왜 이렇게 커요?” “귀가 커야 네 말을 더 잘 들을 수 있지.” “할머니 손이 왜 이렇게 커요?” “손이 커야 널 더 잘 잡을 수 있지.” “할머니 입은 왜 이렇게 커요?” “입이 커야 널 더 잘 잡아먹을 수 있지!” 늑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불쌍한 작은 빨간 모자를 한입에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 그림 형제 ‘작은 빨간 모자’ 중에서 대통령 부부가 부산과 서울에서 따로따로 사전 투표했다. 정부 수장은 당일에 투표한다는 상식이 깨졌다. 아침 일찍 대통령 부부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나란히 투표함에 넣는 사진도 사라졌다. 선거 날은 법정 휴일이다. 굳이 본선거 닷새 전..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5] 누가 누가 더 ‘비범한 사람’인가?

조선일보 2024. 4. 3. 03:07 비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과 어떻게 구별됩니까? 제 말은 여기엔 좀 더 외적인 확실성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겁니다. 저 같은 실제적이고 사상이 온건한 인간이 갖게 되는 불안이라고 여기고 용서하십시오. 이를테면 특별한 옷으로 정한다든지, 무슨 표지를, 인장 같은 거라도 지니고 다닌다든지, 뭐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만약 혼란이 생겨서 한쪽 부류의 인간이 자기가 다른 쪽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당신의 아주 적절한 표현대로 ‘모든 장애를 제거하기’ 시작한다면, 그땐 정말….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중에서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비범한 사람에겐 법을 넘어설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애물을 제거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사람이 영웅이라고 믿었..

3·1운동 참가자들이 기다린 ‘고도’는 무엇이었을까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중앙일보 2024. 3. 1. 00:34 작가 레지스탕스 경험 담긴 희곡 ‘고도’는 해방과 온갖 동경 상징 3·1운동도 여러 동기의 복합체 근대적 시민 탄생 운동으로 봐야 연극은 두 나이든 남자가 ‘고도(Godot)’라는 미지의 인물을 기다리지만, 그는 언제나 ‘내일 오겠다’는 말만 전할 뿐이고 기다림이 계속된다는 내용이다. 작가 베케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 희곡을 썼다. 고도는 정녕 누구란 말인가? 이 극을 처음 ‘부조리극’이라 부른 영국의 연출가 에슬린은 이런 말을 했다. 1960년대 폴란드 관객은 고도가 소련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했고, 알제리 농부들은 고도가 공염불이 된 토지개혁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각자가 처한 현실에 대입이 가능하다는 점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매력..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2] 느리지만 견고하게 세상을 바꾸는 힘

조선일보 2024. 2. 21. 03:02 권력을 가진 자와 죄인은 성서의 언어로 볼 때 동의어다. 권력은 그들을 거만함과 시기로 가득 채우고 형벌을 받지 않는다. 대주교는 과달루페 성모에 대한 설교로 내가 받은 박해에서 자신은 면책받았다. 그는 과달루페 성모의 전통에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의심했다. 그러나 주민들을 속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자신을 정당화하고 주민들을 통치하기 위해. 그는 즉시 나를 비난하는 설교를 하라고 명했고 죄인이나 도둑처럼 나를 감금하라고 명령했다. -레이날도 아레나스 ‘현란한 세상’ 중에서 쿠바가 우리나라의 수교국이 됐다. 쿠바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카스트로보다 더 유명한 아르헨티나 출신 체 게바라, 미 해군기지와 테러범 수용소가 있는 관타나모, 북한과..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1] 국회에서 열린 종북 세미나

조선일보 2024. 2. 7. 03:03 악은 가스와도 같다. 눈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냄새로 식별할 수 있다. 악은 걸핏하면 정체되어 숨 막히는 층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형태가 없기 때문에 악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다가 악이 해놓은 일을 발견한다. 악이 차지한 지위와 이룩한 과업을 보고서야 자신이 졌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가스를 몰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사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가스는 팽창, 탄력, 압축, 억압의 특성을 갖고 있다.’ 바로 악의 특성이 아닌가. -아멜리 노통브 ‘오후 네 시’ 중에서 어린 시절 등하굣길에 잡상인이 있었다. 장사엔 관심이 없는 듯 귀에 늘 무언가를 꽂고 골똘히 앉아 있었다. 소형 무선 라디오나 이어폰이 흔치 않을..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0]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번 승강장

조선일보 2024. 1. 24. 03:02 해리는 지나가는 역무원을 불러 세웠지만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이란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역무원은 호그와트라는 곳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고, 해리가 그곳이 이 나라 어느 지역에 있는지조차 말하지 못하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해리가 절망감을 느끼며 11시에 출발하는 열차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역무원은 그런 열차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역무원은 시간을 낭비했다느니 어쩌니 투덜거리며 성큼성큼 가버렸다. 이제 해리는 공황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 조앤 롤링 ‘해리포터’ 중에서 2021년 8월 15일, 육군은 ‘광복군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포스터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한창 반일 감정을 부추길 때여서 한국은 식민지, 국군의 주적은 일본이라고 말..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49] 정당의 철학

조선일보 2024. 1. 17. 03:03 디키의 옷장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톰은 양복을 꺼냈다. 구두도 신었다. 톰은 갈색 실크 넥타이를 골라 정성껏 맸다. 양복이 몸에 꼭 맞았다. 디키처럼 가르마를 조금 더 옆에서 타서 넘겼다. 톰은 다시 옷장으로 시선을 돌려 맨 위 선반에 있는 모자를 꺼내 비스듬히 썼다. 정수리와 이마를 가리니 디키하고 닮아도 너무 닮아 보여 톰은 흠칫했다. 힘만 제대로 주면 눈썹까지 빼닮았다. “뭐 하는 거야?” 톰이 몸을 홱 돌렸다. 디키가 침실 문 앞에 서 있었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재능 있는 리플리’ 중에서 지난 6일,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전시관, 박물관, 도서관, 동상을 세우고 공원과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영화와 도서를 제작, 영..

이하늬가 피운 흥행의 꽃, '밤에 피는 꽃' [종합]

마이데일리 2024. 1. 14. 16:03 배우 이하늬의 일당백 활약으로 '밤에 피는 꽃'의 문을 열었다. 13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밤에 피는 꽃'이 이 방송 2회 만에 순간 최고 시청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전국 시청률 8.2%(전국 가구 기준, 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한 데 이어, 순간 최고 시청률이 10.7%까지 치솟으며 MBC의 새로운 흥행작 탄생을 알린 것. 전설의 복면 미담을 찾던 수호는 얼굴을 가리는 너울을 쓴 여화에게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소?”라는 질문을 던지며, 정체를 의심했고, 팽팽하게 대치를 이뤄 쫄깃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단 2회 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에 진입하며 제대로 흥행 신호탄을 쏘아올린 ‘밤에 피는 꽃’. 여기서 주인공 여화 역을 맡아 극을 이끌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