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氣칼럼니스트/송호근의 세사필담 15

[송호근의 세사필담] 강남스타일!

중앙일보 2024. 2. 20. 00:42 고종도 이승만도 독고다이 기질 독선의 유혹은 파산 아니면 감옥 석열스타일 유효기간 지났는데 반전 없는 용산으론 역전 난망해 ‘인생은 독고다이(특공대)!’. 국민 스타 이효리가 모교 졸업식에서 작정하고 한 말이다. 굳건히 견디고 자신을 믿으라는 충고다. 얼마나 험한 가시밭이었으면 이런 내심을 비췄을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해야 하는 예인(藝人)에게는 약인데, 독선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정치가에게는 독(毒)이다. 요즘 인기몰이 중인 ‘건국전쟁’의 주인공 이승만도 그랬다. 패권국 미국과 감히 담판을 해내는 약소국 지도자가 누가 있었을까. 단정 수립 아니면 북한 정권에 먹혔을 가능성이 컸다. 토지개혁은 더러 알려졌지만, 이승만이 밀어붙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생소할 것이다...

[송호근의 세사필담] 개에 대한 명상

중앙일보 2024. 1. 23. 00:47 개가 보기에도 한심한 정치판 개식용 금지법으로 연정 선보여 전직 대통령 묘소에 머리 숙인들 물갈이 빅텐트 이뤄낼지 못 믿어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외신들이 난리가 났다. 미국 CNN은 방송 도중 속보를 내보냈고, 주요 통신사들도 호들갑을 떨었다. 네팔, 필리핀, 인도네시아처럼 개를 먹는 나라가 더러 있음에도 이렇게 조명을 받는 건 한국이 G10 멤버이기 때문일 것이다. ‘드디어 후진국을 벗어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이런 표현에는 문화적 경멸감도 읽힌다. 조선 최초의 어류도감을 만들고 있던 정약전 선생이 산개를 정말 먹었을까만, ‘개’라면 당대의 시대적 고통을 앓는 몸에 들어가 보양이 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오죽했으면 작가 김훈이 스스로 ..

[송호근의 세사필담] 북콘서트의 계절

중앙일보 2023. 11. 28. 00:51 정의로 치장한 정치인 북콘서트 외설과 비루한 표현의 난장판 국민 공헌과 시민 역할을 가로챈 말 고수들 가려 낙선운동 펼쳐야 글로 생계를 잇는 전업 작가는 자신의 저서가 부끄럽다. 혹시 투박한 감정이 들키지는 않았는지 노심초사다. 긴장감이 역력한 저자를 만나는 자리, 북카페에서 조촐하게 열리는 독자와의 대화는 정겹다. 그런데 도시를 옮겨 다니며 요란한 북콘서트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특별한 목적이 있다. 과시와 변명, 팬덤 관리, 공론 왜곡. 정치인들의 레퍼토리다. 86세대의 맏형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테이프를 끊었다. ‘별것도 아닌’ 돈봉투 건으로 자신과 주변을 못살게 구는 검찰을 겨냥한 분노와 적개심이 적란운처럼 피어올랐다. 저서 제목도 ‘선전포고’였다.....

[송호근의 세사필담] 동학이 항일투쟁이라고?

중앙일보 2023. 10. 3. 00:56 정치적 의도로 역사 덧칠은 금물 동학법 개정안은 동학 본질 이탈 제폭구민 척왜양 투쟁 불사했지만 사민평등 자각한 종교개혁이 본질 줏대 없다는 뜻의 좌고우면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정치권이 역사적 사건을 평가할 경우다. 야당은 홍범도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동학(東學)을 불러들였다. 국회 상임위 소위에서 강행 처리된 동학법 개정안은 직선적이고 거칠다. 1894년 동학농민봉기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대우하고 ‘고손(高孫)’까지 교육·취업·의료 혜택을 부여한다는 것.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기에” 독립유공자, 130년 전 일이라 고손이라 했다. 족보를 뒤지고 고조부 행적을 찾아 나서야 할 판이다. 1894년 봄 백산 결의문엔 사람존중, ..

[송호근의 세사필담] OC목장의 결투

중앙일보 2023. 9. 5. 00:56 해양과 대륙 간 진자운동 역사 출구없는 이분법 격돌정치 초래 이념 도리깨로 역사를 타작하면 한국은 순백의 초원으로 나갈까 가을비가 폭염을 멀리 보냈다. 곧 추석이 올 것이다. 오래전 추석엔 극장가가 붐볐다.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애정극, ‘OK목장의 결투’ 같은 서부극이 인기였다. 필자는 서부활극파였다. 악당이 총에 맞는 순간의 짜릿함이라니.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총잡이의 고독에 매료됐다. 불과 몇 초의 결투로 OK목장은 평정을 되찾는다. 소와 말이 사이좋게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도 절대 안 바뀌는 것들이 있다. 머리와 가슴을 짓이기는 이분법 격돌정치. 국민도 진영화된 격투기에서 타협은 배신, 휴전은 굴종이다. 문패가 5년마다 바뀐다니 팬덤,..

[송호근의 세사필담] 사막에 줄긋기

중앙일보 2023. 8. 8. 00:58 인권과 교권이 맞닿아 분쟁 발생 도리보다 권리를 부추긴 민주화 양육과 훈육이 뒤섞인 교육 현장 개념 분리와 중간 전문기구 절실 얼마 전 튀르키예가 쿠르드족을 국경 밖으로 쫓았는데, 과연 쫓아낸 건지 헷갈린다. 조상을 찾아 모래언덕을 다시 건너오는 걸 막을 수 없다. 쿠르드족도 딱하고, 3개 국가도 딱하다. 분쟁이 끊일 날이 없다. 사막에 줄긋기다. 사막에 줄긋기, 요즘 문제가 된 아동학대처벌법과 학생인권조례가 딱 그 모양이다. 정서적, 신체적 학대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학대의 주체가 주로 교사로 상정되기에 학생이 피해를 호소하면 곧장 고소·고발이 가능하다. 10만 명 장애아동이 다니는 특수학교를 위시해 초중등학교에서 고발 행위가 빈번한 이유다. 지난 5년간 12..

[송호근의 세사필담] 해류는 몸을 뒤척이며 흐른다

중앙일보 2023. 7. 11. 01:15 운동권 후예들의 ‘죽창가2’ 합창 해류의 일생을 외면한 정치 선동 원자로 밀집한 한반도 주변 바다 후쿠시마식 대응 실험 지켜봐야 이순(耳順)에 도달한 함운경씨는 군산 횟집 주인이 됐다. 1985년 미문화원 방화사건 주인공이자 전 삼민투위원장, 그가 ‘핵폐수’ 충격을 보다 못해 마이크를 잡았다. 오염수 괴담은 비과학적, 반일 감정을 지피는 군불이라고. 광장시위에 나선 야당 의원들은 함씨의 운동권 동료와 후배다......괴담과 과학이 충돌하고, 과학도 분분한 현실에서 세슘 우럭, 방사능 참돔, 트리튬 방어가 뛰어노니 헷갈린다. 가장 시끄러운 나라가 한국이다. 야당이 호기를 잡았다. ‘최인접 국가 한국이 (세계를 대신해) 면죄부를 주고 들러리 서는 것’이라 했다.정의..

[송호근의 세사필담] 국력의 계절

중앙일보 2023. 6. 13. 01:10 「 어느새 강대국 반열에 오른 한국 6070 베이비부머에겐 낯선 풍경 구성 영역 간 불화로 몸살 앓는데 국력과 상징자본 증발할까 두려워 」 유신 시대에나 유행했던 저 말이 새삼스러운 요즘이다. 모든 게 국력이었다. 전국 체전이 국력 깃발 아래 열렸고, 국제기능올림픽 수상자는 카퍼레이드 주인공이 됐다. 국위를 선양한 애국자에게 베푼 선물이었다. 4전5기 홍수환, 탁구 여제 이에리사의 카퍼레이드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금빛 은빛 색종이가 나부꼈던 거리, ‘잘 살아보세’ 노래가 울려 퍼지는 광장을 출퇴근했던 사람들은 이제 6070이 됐다. 베이비부머, 전형적인 꼰대세대다.......꼰대세대에겐 가난이 더 익숙하다. 경제력 세계 8위, 군사력 6위란다. 상전벽해인데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