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 5231

[C컷] 1960년대 서울 풍경

조선일보  2024. 4. 27. 07:00 원로사진가 황규태 사진전 황규태(86)는 촬영한 필름을 태우거나 프린트한 사진의 일부만 확대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사진가다. 사진의 일부만 따와 합성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포토샵이나 AI로 사진보정도 되는 오늘날엔 아무것도 아니지만 1960년대부터 이런 작업을 해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외국 사진 잡지들을 보면서 사진을 공부하던 시절 황규태는 잡지에서 우연히 본 제리 율스만(Jerry Uelsmann)의 초현실적인 사진에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합성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에 그는 태양이나 고층 빌딩을 촬영한 필름을 태워 인화하거나 다른 사진에서 일부만 따와 새로운 이미지를 조합해서 몽타주 형식의 사진을 만들어 낸다. 남들이 뭐라 ..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08] 작고 작은 이 세상

조선일보 2024. 4. 22. 03:03 ‘It’s a Small World’(1964) 지구상의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노래는 어떤 것일까? 장르를 불문하고 본다면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전 세계에 울려 퍼지는 ‘Stille Nacht, Heillige Nacht’일 것이다. 우리나라 제목으로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으로 번역된 이 노래는 오스트리아 오르가니스트이자 합창단 감독인 프란츠 자비어 그루버가 작곡했다. 백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이 노래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이들을 위한 노래들 중 많은 국가 및 민족들이 공유하는 곡을 꼽으라면 생일 축하 노래로 정착한 ‘Happy Birthday to you’와 셔먼 형제가 작곡한 ‘It’s a Small World’가 될..

[사진의 기억] 새마을운동

중앙SUNDAY 2024. 4. 20. 00:06 새마을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내 고향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던 그 시절, 오늘 본 그곳은 어제 봤던 그것이 아니었다. 지붕 개량, 농로와 마을 길 확장, 하천 정비 등 날마다 마을 사람 수십 명이 모여 삽질하고 흙과 돌멩이를 실어 나르느라 온종일 분주했다. 1970년대 초, 농촌의 환경을 개선하고 소득을 올린다는 새마을운동의 목표는 새마을 노래의 가사처럼 “잘살아보세~”가 키워드였다. 사실 대대로 우리나라 농촌이 잘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대부분 늘 배고팠고 헐벗었고 부족했다. 그러니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난다는 새마을운동에 반대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돌격 앞으로!”의 군인정신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새로운 마을공동체 건설에 앞장섰다. 형식은 종종 내용을..

“너만은 믿었는데!” 30년 단짝친구의 돌발행동?…곧장 갈라선 사연[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헤럴드경제 2024. 4. 20. 00:11 [작품편 101. 폴 세잔] 천 위에 올려진 사과 살인 사과와 오렌지 "에밀 졸라, 이 나쁜 자식!" 폴 세잔이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는 좁은 작업실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세잔은 손에 든 책을 구길 듯 꽉 쥐었다. 그것은 그의 단짝이자 잘나가는 작가, 에밀 졸라가 쓴 소설 〈작품(The Masterpiece)〉이었다. 세잔도 처음에는 졸라가 보낸 이 책을 반갑게 펼쳤다. 그런데, 종이를 넘길수록 기분이 묘해졌다. 책 속 주인공은 가상 인물 클로드 랑티에였다. 나름 안목과 확고한 철학이 있지만, 세상의 인정을 좀처럼 받지 못하는 비운의 화가였다. 랑티에는 그림을 그릴수록 놀림만 받기 일쑤였다. 야심차게 전시회에 나섰지만, 이 또한 결과적으로 조롱만 ..

억눌린 분노의 상징[이은화의 미술시간]〈315〉

동아일보 2024. 4. 17. 23:30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필립스 컬렉션은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관이다. 1921년 미술품 컬렉터였던 덩컨 필립스가 설립했다. 인상파 이후 유럽 현대미술을 가장 먼저 미국에 소개한 이곳은 현재 5000점이 넘는 소장품을 자랑하고 있다. 그중 필립스가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칭송한 작품이 있는데, 바로 오노레 도미에의 ‘봉기’(1848년경·사진)다. 부호 컬렉터는 어째서 민중 봉기를 그린 그림에 매료됐을까? 필립스는 피츠버그의 대부호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업보다는 가문의 돈을 잘 쓰는 데 진심이었던 터라 열정적인 미술품 수집가가 되었다. 30대 초 아버지와 형을 차례로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 그는 자택 안에 가족을 기리는 필립스 메모리얼 갤러리를 설립했다. 화가 마저리 ..

[사진의 기억] 아버지의 ‘살갗’으로부터

중앙SUNDAY 2024. 4. 13. 00:06 수정 2024. 4. 13. 01:37 “아버지와 나 사이는 내가 열일곱 살이 된 어느 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늙고 처진 아버지의 살갗을 보고 울컥하던 순간, 관계의 변화를 직감했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때부터 렌즈를 사이에 두고, 아들의 시선이 아버지를 향했다. 돋보기를 쓰고 책 속에 깊이 묻힌 봄날의 아버지, 거친 수렁을 톱과 쇠스랑으로 일궈 논을 만드는 여름날의 아버지, 그 논에서 쌀을 수확해 가을볕에 말리는 아버지, 낡은 지게로 땔나무를 지어 날라 장작불을 지피는 한겨울의 아버지…. 아버지가 강원도 화천의 산골 집을 벗어나 제주도로 향할 때면, 카메라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강정마을에서 깃발을 높이 들고 투쟁하는 ..

[C컷] 봄의 추억을 “찰칵!“

조선일보 2024. 4. 11. 07:01 올해 봄 꽃 풍경들 기자는 겨울을 싫어한다. 그래서 봄이 더 반갑다. 추위가 잦아들고 3월 초가 되면 부산 배화학교 벚나무에 꽃이 피었나 확인한다. 다른 벚나무보다 빨리 개화 하는 편에 속한 부산 배화학교 벚꽃을 찍으면 진짜 봄이 왔다고 느낀다. 올해는 대부분 지역의 벚꽃 개화가 예상보다 늦어져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연 곳이 속출했다. 그래서 늦게 핀 만큼 더욱 반가웠다. 언제부터 꽃을 좋아했나 생각해봤다. 대학 시절 동기,선후배 다 모아 십시일반으로 빌린 잘 안 나가는 승합차 타고 ‘하하호호’ 하며 늦은 밤 도착한 경남 진해 여좌천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꽃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처음 느꼈다. 15년 전 그날 밤 꽃을 보며 감상에 젖던 청년의 감성은..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부끄러움을 일깨워 준 화엄사 홍매화

한국일보 2024. 4. 8. 04:31 어둠이 내려앉은 산사의 밤은 적막감이 감돈다. 단, 지금 이 시기 전남 구례군 화엄사는 예외다. 300년 된 홍매화를 보려는 발길이 전국에서 밤낮없이 이어진다. 이런 북적거림이 싫어서였을까. 매년 마음에만 두고 있던 화엄사 홍매화를 찾았다. 사찰 정문인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면 사천왕상이 맞아준다. 험상궂는 인상에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눈앞이 환하게 빛난다. 한밤중에도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는 홍매화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300여 년 역사를 안은 고목의 자태와 그 속에 피어난 붉은 꽃잎은 숭고함과 함께 신비로움을 더한다. 굵은 몸통과 이끼 낀 나무껍질은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뎌온 우리 민족의 애환을, 핏빛의 매화꽃은 어려움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