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1312

[사진의 기억] 새마을운동

중앙SUNDAY 2024. 4. 20. 00:06 새마을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내 고향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던 그 시절, 오늘 본 그곳은 어제 봤던 그것이 아니었다. 지붕 개량, 농로와 마을 길 확장, 하천 정비 등 날마다 마을 사람 수십 명이 모여 삽질하고 흙과 돌멩이를 실어 나르느라 온종일 분주했다. 1970년대 초, 농촌의 환경을 개선하고 소득을 올린다는 새마을운동의 목표는 새마을 노래의 가사처럼 “잘살아보세~”가 키워드였다. 사실 대대로 우리나라 농촌이 잘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대부분 늘 배고팠고 헐벗었고 부족했다. 그러니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난다는 새마을운동에 반대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돌격 앞으로!”의 군인정신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새로운 마을공동체 건설에 앞장섰다. 형식은 종종 내용을..

[사진의 기억] 아버지의 ‘살갗’으로부터

중앙SUNDAY 2024. 4. 13. 00:06 수정 2024. 4. 13. 01:37 “아버지와 나 사이는 내가 열일곱 살이 된 어느 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늙고 처진 아버지의 살갗을 보고 울컥하던 순간, 관계의 변화를 직감했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때부터 렌즈를 사이에 두고, 아들의 시선이 아버지를 향했다. 돋보기를 쓰고 책 속에 깊이 묻힌 봄날의 아버지, 거친 수렁을 톱과 쇠스랑으로 일궈 논을 만드는 여름날의 아버지, 그 논에서 쌀을 수확해 가을볕에 말리는 아버지, 낡은 지게로 땔나무를 지어 날라 장작불을 지피는 한겨울의 아버지…. 아버지가 강원도 화천의 산골 집을 벗어나 제주도로 향할 때면, 카메라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강정마을에서 깃발을 높이 들고 투쟁하는 ..

[C컷] 봄의 추억을 “찰칵!“

조선일보 2024. 4. 11. 07:01 올해 봄 꽃 풍경들 기자는 겨울을 싫어한다. 그래서 봄이 더 반갑다. 추위가 잦아들고 3월 초가 되면 부산 배화학교 벚나무에 꽃이 피었나 확인한다. 다른 벚나무보다 빨리 개화 하는 편에 속한 부산 배화학교 벚꽃을 찍으면 진짜 봄이 왔다고 느낀다. 올해는 대부분 지역의 벚꽃 개화가 예상보다 늦어져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연 곳이 속출했다. 그래서 늦게 핀 만큼 더욱 반가웠다. 언제부터 꽃을 좋아했나 생각해봤다. 대학 시절 동기,선후배 다 모아 십시일반으로 빌린 잘 안 나가는 승합차 타고 ‘하하호호’ 하며 늦은 밤 도착한 경남 진해 여좌천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꽃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처음 느꼈다. 15년 전 그날 밤 꽃을 보며 감상에 젖던 청년의 감성은..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부끄러움을 일깨워 준 화엄사 홍매화

한국일보 2024. 4. 8. 04:31 어둠이 내려앉은 산사의 밤은 적막감이 감돈다. 단, 지금 이 시기 전남 구례군 화엄사는 예외다. 300년 된 홍매화를 보려는 발길이 전국에서 밤낮없이 이어진다. 이런 북적거림이 싫어서였을까. 매년 마음에만 두고 있던 화엄사 홍매화를 찾았다. 사찰 정문인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면 사천왕상이 맞아준다. 험상궂는 인상에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눈앞이 환하게 빛난다. 한밤중에도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는 홍매화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300여 년 역사를 안은 고목의 자태와 그 속에 피어난 붉은 꽃잎은 숭고함과 함께 신비로움을 더한다. 굵은 몸통과 이끼 낀 나무껍질은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뎌온 우리 민족의 애환을, 핏빛의 매화꽃은 어려움 속에서..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유연함·강인함을 갖춘 버드나무

한국일보 2024. 4. 1. 04:30 여의도 샛강공원은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긴긴 겨울엔 가지들이 잎을 떨구고 ‘산발’로 지냈지만 지금은 그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면 가지들이 연초록색 파도를 일으킨다. 여의도 빌딩 사이로 아침 해가 솟아오르자 새벽어둠 속에서 깨어난 버드나무 가지에선 연초록 새싹들이 빛을 내뿜는다. 얼마 후면 풍성한 녹색 물결로 바뀔 테지만 버드나무는 요즘 빛깔이 일 년 중 가장 예쁘다. 예로부터 강 옆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자란다. 이 나무가 홍수와 가뭄 등 척박한 환경에서도 무럭무럭 크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잘 휘어지고 복원이 빠른 버드나무의 유연성에서 역경을 이겨내는 강한 생명력을 배우기도 했다. 거친 비바람에도 유연함으로 꺾이지 않고 살아..

[사진의 기억] ‘리알 포토’로부터 온 춤

중앙SUNDAY 2024. 3. 30. 00:04 가볍게, 발들이 들려있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흰 고무신과 모시 바지, 치마에도 무게가 없다. 풍성한 주름들은 곧 여성을 따라 풀릴 준비를 마친 듯하다. 이미 고무신이 걸음을 뗐다. 보이지 않지만, 남자의 팔은 아마도 그의 다리처럼 허공을 슬며시 들어 올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현장의 부분, 인물들의 일부만이 담겨있을 뿐인데, 정사각의 사진 안에 춤이 가득하다. 한국의 대표 사진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황규태의 ‘블로우업 bLowup’이다. ‘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사진은 원래, 1968년 어느 날 서울 뚝섬의 한 너른 마당에 군중들이 모여 춤을 추는 모습을 찍은 ‘리알 포토’(리얼리즘 사진)였다....그 중 한 쌍의 하반신만을 자르고 확대한 것이다..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노을빛

한국일보 2024. 3. 25. 04:31 지난주 절기상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이 지나갔다. 이젠 낮이 점점 길어져 달을 보며 힘겹게 출퇴근하던 직장인들이 주변이 환할 때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됐다. 한강에 노을이 붉게 물든 저녁 무렵 반포대교를 찾아갔다. 태양이 다리 아래로 서서히 저물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퇴근길 버스 안에는 하루 종일 일과에 시달린 직장인들이 가득했다. 붉은 햇살이 버스 안에 스며들 때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그 강렬한 빛은 버스 안 사람들을 보듬으며 따듯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최근 사과 대파 등 생활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가계 부채는 계속해서 늘어만 간다. 서민들은 점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급여는 물가 상승 속도에 한참이나 뒤처져 ..

[사진의 기억] 엄마의 꽃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중앙SUNDAY 2024. 3. 16. 00:18 수정 2024. 3. 16. 02:01 석작. 한 세대 전만 해도 서민들 가정에서 흔히 쓰이던 물건인데 이제는 그 이름조차 아는 이가 드물다. 나무로 만든 궤나 농이 발달하기 이전부터 생활용품을 담는 용도로 사용되던 바구니 함이다. 고리라고 하면 좀 더 익숙할까. 주로 버드나무가지로 엮어서 버들고리란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몇 해 전 사진가 한상재는 노모가 홀로 지내시던 친정집에서 석작 하나를 발견했다. 당시 아흔을 넘긴 어머니는 병원 침대에 누워,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었다. 가끔씩 빈집에 들러 화분에 물을 줄 때마다 어머니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이 초조했다. 딸인 자신이 엄마의 물건을 챙기고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25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