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1315

[사진의 기억] 들리나요, 어린 누이의 귓속말

중앙SUNDAY 2024. 2. 17. 00:04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어린 동생이 울며 투정을 부리자, 누이가 무어라 말하며 어깨를 토닥인다. 누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의 언어들을 얼마나 익혔을까 싶은 어린아이다. 그래도 누이는, 그 빈약한 언어 속에 동생을 달랠 수 있는 말 몇 마디를 품고 있었던가 보다. 엿들을 수 없는 누이의 말을, 사진이 들려준다. 사진과 한두 줄의 짧은 글이 함께하는 조병준의 아포리즘 사진 ‘길 위의 시(詩)’. “긴 산문으로도 끝내 다 쓸 수 없는 이야기를 한 줄의 시로 할 수 있듯이, 백 쪽의 글로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한 컷의 사진이 설명해 낼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때로 사진과 시는 등가다.” 조병준은 ‘시인’이다. 그러나 그를 시인이라고만 하기엔 수식이 부족하다..

[사진의 기억] 집안으로 나비가 들어오면

중앙SUNDAY 2024. 1. 27. 00:06 빈 벽 앞에 꽃무늬 방석이 하나 오롯하다. 벽지가 밀리고 해진 흔적으로 등을 기대었던 사람을 기억하고 있듯이, 가운데가 팬 방석도 앉았던 사람의 무게를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빈집을 찍은 사진가 인주리의 사진 시리즈 ‘어리비치다’의 한 장이다. 사진의 배경이 된 충청남도 당진의 집은 160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기와집으로, 인주리의 조상들이 대를 이으며 살아왔다. 인주리는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사람이고, 아버지는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들은 이사를 했고, 가구와 물건들은 그대로인 채 더 이상 사람은 살지 않는 빈집이 됐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 아직도 빛이 들어와서 머물다 사라..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두루미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한국일보 2024. 1. 22. 04:31 한겨울 날씨 같지 않은 따스한 기온에 우리나라를 찾은 겨울 철새들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말을 맞아 두루미와 고니 그리고 다양한 겨울 철새들을 볼 수 있는 강원도 철원군 이길리에 있는 철원철새도래지관찰소를 찾았다. 관찰소에 도착하니 밤사이 내려간 기온 때문에 주변 나무에는 새하얀 상고대가 피어 있었다. 상고대를 감상하고 있던 중, 멀리서 두루미들이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루미들은 밤사이 천적을 피해 근처 토교저수지에서 밤을 지새우고 먹이활동을 위해 아침이면 이곳으로 날아오는 것이다. 두루미들은 상고대가 핀 숲을 배경으로 멋진 비행을 선보이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땅에 내려앉아 다양한 종류의 철새들과 함께 먹이를..

[조용철의 마음풍경] 거친 파도에 부서져 둥글둥글…몽돌을 바라보며

중앙일보 2024. 1. 21. 07:00 거친 파도에 부서져 둥글둥글 억겁의 세월 생명을 보듬었네. 거칠고 모진 본디 모습 버리고 심성 고운 아낙네 얼굴 되었네. ■ 촬영정보 「 전남 여수 돌산읍 무슬목 해변, 큰 몽돌만 드러나도록 삼각대를 활용해 장노출로 촬영했다. 렌즈 70~200mm, iso 100, f32, 1초. 」 https://v.daum.net/v/20240121070035516 [조용철의 마음풍경] 거친 파도에 부서져 둥글둥글…몽돌을 바라보며 [조용철의 마음풍경] 거친 파도에 부서져 둥글둥글…몽돌을 바라보며 거친 파도에 부서져 둥글둥글 억겁의 세월 생명을 보듬었네. 거칠고 모진 본디 모습 버리고 심성 고운 아낙네 얼굴 되었네. 세월이 흐르고 나서 알게 되네. 자신이 얼마나 모나게 살았는..

‘불 뿜는 두루미’…기막힌 일출 포착 사진에 日네티즌 감탄

국민일보 2024. 1. 19. 00:05 사진작가 우에다 키코씨 지난해 12월 홋카이도 츠루이무라 마을에서 촬영 SNS서 390만회 조회 ‘화제’ 눈 내린 땅 위에 선 두루미들은 하늘을 향해 부리를 치켜들고 주황색 입김을 내뿜는다. 그 순간 주변의 냉기는 열기로 변하는 듯하다. 일출 시간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두루미들이 불꽃을 내뿜고 있는 것처럼 포착된 사진이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8일 일본 매체 ‘J타운넷’ 따르면 니가타현에 거주하는 사진작가 우에다 코키씨가 촬영한 두루미 사진이 일본 현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촬영된 사진을 보면 두루미 두 마리가 하얗게 눈이 쌓인 땅 위에 꼿꼿하게 서서 하늘을 향해 주황색 입김을 내뿜고 있다. 흰 입김이 햇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물든 것이다...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눈 속에서도 식지 않는 ‘사랑의 열쇠’

한국일보 2024. 1. 15. 04:31 멀리서 바라만 봤던 남산이 오랜만에 내린 폭설로 하얗게 물들었다. 서울시내 쪽은 눈이 대부분 녹았지만 남산 숲은 새하얀 눈이 나뭇가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남산타워에 올라가니 평일인데도 관광객과 산책 나온 시민들로 붐볐다. 한겨울 정취를 즐기며 주변을 둘러보다 타워 난간에서 눈에 덮인 ‘사랑의 열쇠’를 발견했다. 각양각색의 열쇠와 겉 표면에 적힌 사랑의 약속들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찾는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의 열쇠를 걸어두었다. ‘사랑의 열쇠’의 유래는 백여 년 전 세르비아 브르냐츠야 바냐의 다리인 루바비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남산타워의 사랑의 열쇠들은 찬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햇살만큼 반짝였다. 자세..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폭설과 한파가 빚어낸 한 폭의 동양화

한국일보 2024. 1. 1. 04:32 지난주 내내 폭설과 한파로 전국이 몸살을 앓았다. 강추위에 바다도 얼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인천 강화군 끝자락 동막해수욕장을 찾아갔다. 이곳은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라 겨울에도 주말이면 많은 사람이 온다. 특히 한파가 오래 지속되면 얕게 깔린 바닷물이 얼어붙어 경이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물 위에 떠다니는 얼음들이 백사장과 갯벌을 가득 메우면 마치 북극에 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막상 해변을 찾았을 땐, 얼마 전 내린 눈이 조금 쌓였을 뿐 평범한 겨울바다였다. 혹시나 백사장 너머 바다 쪽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 갯벌로 드론을 날려 봤다. 공중에 높이 띄운 드론은 사진작가들에게 상상 이상의 새로운 이미지를 선물한다. 그동안 카메라를 통해 눈에 보이는 피사체..

[포토에세이] 실수로 찍힌 풍경

한겨레 2024. 1. 1. 19:00 수정 2024. 1. 1. 19:50 찬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동네 공원을 걷는데, 한 중년이 그네 의자에 앉아 먼발치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요즘 들어 외로운 나를 보는 듯했다. 순간 옆구리에 있던 수동 사진기를 꺼냈지만, 아차! 노출을 과다하게 찍고 말았다. 며칠 뒤 그 장면을 지울까 하다가 가만히 바라보니 왠지 화사하고 따듯해 보였다. 요즘처럼 추운 계절에 실수로 찍힌 사진이 스스로 용서가 되었다. 이게 ‘자뻑’일 것이다. https://v.daum.net/v/20240101190024695 [포토에세이] 실수로 찍힌 풍경 [포토에세이] 실수로 찍힌 풍경 찬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동네 공원을 걷는데, 한 중년이 그네 의자에 앉아 먼발치를 한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