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1315

[사진의 기억] 가슴 속 빈터에 세운 집

중앙SUNDAY 2023. 12. 30. 00:04 풀숲에 집이 한 채 서 있다. 앞에는 흰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있고, 뒷산 능선 위로 불그레한 노을이 넘어가는 중이다. 집 안을 밝히고 있는 어떤 온기로, 창문이 환하다. 연필 선 몇 개로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단순한 모양의 집. 어디선가 본 듯한 이유는 ‘월든(Walden)’의 저자 데이비드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 짓고 살았던 작은 오두막에서 모양을 빌려 온 때문이다. 폭 3m에 길이 4.5m, 높이 2.4m밖에 되지 않던 소로우의 오두막을 그녀는 더 작게 만들었다. 높이 20㎝ 가량의 ‘미니어처’로 만든 것이다. 모형에 불과한 집이지만, 높다랗게 다락방을 만들고 창문을 냈다. 따듯한 파스텔 색감으로 벽과 지붕을 칠했다. 그리고는 이름 없는 산자락과..

이탈리아 성당 돔 위에 뜬 초승달... 이 순간 위해 6년 기다렸다

한국일보 2023. 12. 29. 20:00 NASA, 올해 가장 뛰어난 '천체 사진'에 이탈리아 작가 바레리오 미나토 작 선정 대성당과 몬비소 산, 초승달 삼중 정렬 미나토 "6년간 날씨, 달 위상 연구 결과"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성당의 둥그스름한 돔 위로 뾰족한 산봉우리가 올라오고, 그 위를 밝은 초승달이 살포시 덮은 사진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선정하는 올해의 가장 뛰어난 '천체사진'으로 뽑혔다. 해당 장면을 찍은 이탈리아 바레리오 미나토 작가는 찰나를 담기 위해 한자리에서 6년을 기다린 것으로 알려졌다. 27일(현지시간) NASA는 "올해 가장 뛰어난 천체 사진 중 하나"라며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토리노에 위치한 수 페르가 대성당과 몬비소 산, 그리고 지고 있는 초승달이 정확..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한파 속 청계천에서 만난 봄 희망

한국일보 2023. 12. 25. 04:31 겨울이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계절을 잊을 만큼 따뜻했던 날씨에 해이해진 몸과 마음이 북풍 찬바람과 폭설에 단단해진다. 준비도 없이 다가온 매서운 추위에 청계천도 한적해졌다. 세차게 흘러가는 물소리만이 겨울의 쓸쓸함을 더한다. 추위를 무릅쓰고 청계천 산책에 나섰다. 곳곳에 눈이 쌓여 있고, 물이 닿은 곳에는 각양각색의 얼음이 태어나 걸으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처럼 마주한 겨울 풍경이 반가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가, 눈부신 빛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다. 빛이 오는 쪽을 바라보니 연말 분위기를 자아내려 청계천 위에 달아놓은 장식물들이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눈부심을 피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 아직 꽃잎을 품은 채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꽃송이들이 인..

[사진의 기억]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앙SUNDAY 2023. 12. 23. 00:04 수정 2023. 12. 23. 01:26 불을 밝혀야 할 시간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온다. 아직 읍내에 나간 아버지도, 막차를 타고 내려올 아들도 귀가하지 않았다.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멀리서 오는 식구에게 기다림의 신호를 보내야 할 시간이다. 사람들이 고향을 묻는다. 고향에 누가 있느냐고도 묻는다. 돌아갈 집이 있느냐,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느냐는 물음이다. 먼 길을 걸어가도 그 길 끝에 어머니가 계신 집이 있으면 고향은 언제나 달려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때는 왜 항상 막차를 탔는지 모르겠다. 그 조급함은 어머니의 기다림과 닿아 있었다. 어김없이 어머니는 불 밝히고 밥상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실..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부자의 전설이 내려오는 의령 솥바위

한국일보 2023. 12. 18. 04:32 경남 의령군 정암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에 특이하게 생긴 바위섬이 있다. 발이 세 개인 솥을 닮았다고 하여 정암(鼎巖), 즉 ‘솥바위’라고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한 도사가 이 바위섬을 보고 주변 20리(약 8km)에 큰 부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솥바위 인근 마을에서는 삼성, LG, 효성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창업주가 3명 태어났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역경 속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어낸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솥바위의 특이한 모양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이런 전설이 생겨났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기 위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https://v...

판다 가족 찰나의 순간, 앵글에 담는 사진가

조선일보 2023. 12. 7. 03:06 ‘올해 100대 사진’에 뽑힌 류정훈씨, 새벽에 달려가 새끼 탄생 장면 담아 지난 7월 7일 새벽 4시 40분. 집에서 잠을 자던 에버랜드 사진가 류정훈(52)씨는 에버랜드로부터 긴급 연락을 받았다. 새끼 출산이 임박했던 판다 아이바오의 양수가 터졌다는 내용이었다. 류씨가 20분쯤 뒤 에버랜드에 도착했을 땐 아이바오가 새끼 판다 한 마리를 출산한 상태였다고 한다. 1시간 40분쯤을 더 기다리자 다시 한번 양수가 터지고 두 번째 판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국내 최초 판다 쌍둥이 자매 ‘루이바오’와 ‘후이바오’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류씨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 쌍둥이 판다 자매 탄생의 순간을 담았다. 그렇게 촬영된 사진은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2023년 올해의 1..

'올해의 환경사진상'에 선정된 사진 한장: 들소 무리는 초원 아닌 모래밭에서 살아간다

허프포스트코리아 2023.12.02 12:44 자연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사진 공모전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이와 달리 영국의 국제 환경 자선단체 시웸(CIWEM=Chartered Institution of Water and Environmental Management)이 주최하는 ‘올해의 환경사진상’은 자연이 직면한 위기에 초점을 맞춘 공모전이다. 16회째를 맞은 올해 공모전 수상작이 발표됐다. 출품작 다수가 기후 위기에 처한 지구의 모습과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담았다. 올해는 159개국 사진작가들이 경쟁에 참가했다. 대상은 단백질식품으로 쓰기 위한 곤충 사육장 사진이 차지했다. 이탈리아 토리노대 연구진이 대체식품 연구용으로 기르고 있는 이 곤충은 북미가 원산지인 아메리..

[사진의 기억] 사진으로 슬픔과 화해하기

중앙SUNDAY 2023. 11. 18. 00:04 이언옥의 사진 ‘슬픔의 질감’ 시리즈는 마음속 감정인 슬픔을 사진으로 시각화함으로써, 그 감정을 감각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한 작업이다. 살아오는 동안 느꼈던 숱한 슬픔들. 원인이 된 구체적 기억들은 이미 사라졌으나, 느낌과 정서는 남아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문득 나타나곤 했다. 아련하게 남은 슬픔의 느낌과 정서가 주변을 둘러싸는 듯한 순간을 만날 때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커튼을 젖히고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을 내다보는 소녀의 뒷모습처럼. 카메라는 아날로그를 사용했다. 대상을 정보로 처리하는 디지털과 달리 빛을 물성으로 받아들이는 필름의 특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일반 인화지 대신 종이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선명하게 담아내는 인화지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