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24. 5. 6. 04:31 어느 황량한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낯선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 향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녹슨 창살과 금이 간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골목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이 황량함을 뒤덮는 듯 무성한 등나무 덩굴이 담벼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자태를 드러낸 보라색 꽃들은 용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여름철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막’ 등나무였지만, 그날은 꽃의 아름다움을 맘껏 발산하고 있었다. 4~5월에 피는 이 꽃은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고, 은은한 향기는 온 골목을 가득 채웠다.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그 아름다움에 취했다. 누군가 먼저 휴대전화를 꺼내 꽃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주변 사람들도 사진에 담기 바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