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9. 2. 23:58 수정 2024.09.03. 07:17
소송에 관리비 계좌까지 압류
낡은 엘리베이터 교체도 못 해
법정이 된 정치, 양극화 불붙여
고발·특검·탄핵이 늘 능사인가
“(입주자 대표 회의‧입대의) 전 회장이 관리비 계좌를 압류하였습니다.”
최근 살고 있는 아파트 1층 출입구에 붙은 짧은 공고문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입대의 내부 갈등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관리비 계좌에 압류가 들어온 건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 법정의 논리가 침투하면 이래서 위험하다. 전자가 조정과 타협을 근간으로 한다면, 후자는 결국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수사에서 피고였던 이들이나, 정권 교체 이후 거꾸로 입장이 바뀐 민주당 인사들을 만나 보면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어떻게든 정권을 움켜쥐어야 살 수 있다는 강박증이 묻어나곤 한다. 정책에서 차이는 적지만, 상대에 대한 적대 수위가 높아지는 정서적 양극화의 원인 중 하나는 법정에 의존하는 정치 행태에 있다.
정치를 법정으로 만드는 행태에 소외되는 건 유권자다. 중도 유권자일수록 상대 정치인에게 고소‧고발을 일삼고, 걸핏하면 재판이나 탄핵을 외치는 행태에 불만이 적잖다. 먹고사는 문제에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정치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국민이 원하는 것은 법정의 논리를 앞세워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당이 아니라 정치의 논리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성과를 내는 정당일 것이다.
https://v.daum.net/v/20240902235815186
[에스프레소] 아파트 관리비까지 법으로 해결한다면
[이응준의 포스트잇] [35] 행복하려는 사람들의 불행한 사회
조선일보 2024. 9. 2. 23:52
그 소설가는 전임교수였다. 총장파(派)와 반(反)총장파 교수들의 충돌이 계속됐다. 비리나 범죄 때문에 벌어진 투쟁이 아니라, 권력 정쟁(政爭)이었다. 후지기로는 양편이 마찬가지고, 해결도 타협도 없어 보였다. 당쟁(黨爭)이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자신이 얼마나 넌더리 나는 모임의 추한 일원인지 따져볼 필요는 늘 있다. 환멸이 싫다고 해서 생활이 보장된 직장을 때려치운다는 게 예나 지금이나 쉬운 노릇은 아니지만, 소설가는 사직했다.
화가로도 성공한 유명 노(老)가수가 있었다. 그의 그림을 거의 다 대신 그려준 유령 화가의 등장과 폭로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때까지 대중은 그 가수에게 그런 존재가 있는지 전혀 몰랐고 그의 그림은 붓질 하나하나 그가 직접 작업한 거라 믿었더랬다. 유령 화가에게 낮은 임금과 인간적 모멸을 상습한 사실은 덤으로 빈축을 샀다. 한 진보(?) 평론가가 그 가수를 옹호하고 법원이 무죄를 판결한 것은 존중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말입니다.”....왜 사람들은 그 가수의 그림을 예전처럼 대접해주지 않을까? 왜 저 가수의 화가 행세에 남의 붓질이 고소거리가 되었으며 무죄 판결 뒤에도 인정(認定) 장애가 지속되는 것일까? 대중이 진보 평론가보다 무식해서? 그건 핵심이 아니다. 많은 화가가 어시스턴트를 데리고 작업을 하지만 그건 유령 화가가 아니라 ‘조수 화가’다....사법적 결과와 상관없이 그가 가짜 화가로 전락하게 된 이유다.
이럴 때 그 가수는 제 그림이 진짜라고 떠들어대기 전에 나는 가짜 화가가 아닌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렇게 진실이란 이론과 법 사이에 숨어 있기도 한데, 우리는 살면서 이런 것들을 ‘민주제도의 급소’처럼 자주 놓친다. 복잡하고 섬세한 내막에 단순한 대답만을 강요하면서 죄인으로 몰아가거나, 정반대로 괴물을 옹호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 정답을 정해놓고 묻는 최악의 질문들이 우글거리는 사회다.
https://v.daum.net/v/20240902235215151
[이응준의 포스트잇] [35] 행복하려는 사람들의 불행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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