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신격호

바람아님 2015. 7. 31. 07:13

(출처-조선일보 2015.07.31 김기천 논설위원)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일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나는 23개 기업에서 생산되는 1만5000가지 제품의 특성과 생산자·소비자 가격을 알고 있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1983년 어느 월간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신 회장이 실제 그 많은 제품의 가격을 모두 알고 있었을까. 

다만 그가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성격에다 수치 감각과 기억력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화는 많다.


▶신 회장은 롯데호텔을 지으려고 세계 유명 호텔을 다 돌아다녔다. 

호텔 카펫과 벽지 색깔까지 지정할 만큼 모든 일을 챙겼다. 

잠실 롯데월드와 백화점이 문을 열 땐 개장 두 시간 전부터 점검에 나섰다. 

매장 진열 상태부터 나사못 하나까지 일일이 고치게 해 임직원들의 혼을 빼놓기 일쑤였다. 

그룹 경영 상태는 물론 경쟁 업체 사정까지 훤히 꿰고 있어 임직원들이 바짝 긴장해야 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신 회장은 열아홉 살에 가출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많은 고초를 겪은 끝에 일본 제과업계 정상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처가(妻家)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일본에서 세 차례나 외상(外相)을 지냈던 시게미쓰 마모루가 신 회장 일본인 부인의 외삼촌이다. 

그는 중국 상하이 공사 시절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한쪽 다리를 잃었다. 

일본이 패망했을 땐 미주리함에서 목발을 짚고 항복 문서에 서명했던 정계 거물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신 회장은 고국에 투자해 더 큰 성과를 거뒀다. 

일본 롯데는 식품 사업에만 집중했다. 롯데 브랜드 껌·초콜릿을 '입 안의 연인(戀人)'이라고 광고했다. 

반면 한국 롯데는 식품에서 유통·관광·석유화학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재계 5위 거대 그룹으로 자랐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자동차·조선 같은 중화학공업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가전·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을 키웠다면 

신 회장은 유통·관광 서비스산업을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코 묻은 돈 긁어모아 부자가 됐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평생 형제간에도 재산권 분쟁이 그치지 않더니 급기야 두 아들이 후계 자리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1만5000개 제품 가격을 모두 알고 있다고 했던 신 회장도 자식들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큰아들이 아버지를 앞세워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자 둘째 아들은 창업주를 총괄회장직에서 몰아내는 

'하극상(下剋上) 쿠데타'를 감행했다. 

형제 복 없는 사람은 자식 복도 없는 것일까. 

성공한 기업가가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