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내부 고발

바람아님 2015. 7. 23. 09:58

(출처-조선일보 2015.07.23 김낭기 논설위원)

2003년 적십자혈액원 직원 김모씨는 혈액원의 부실한 혈액 관리 실태를 한 방송사에 제보했다. 
적십자혈액원이 관리하는 혈액 중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의 혈액을 다른 사람에게 수혈하거나 제약회사에 보냈다고 했다. 
김씨는 제보 내용이 방송에 나간 뒤 신원이 드러나 갖은 고초를 겪었다. 
헌혈자와 수혈자 정보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혈액원에선 해직됐다.

▶여론이 들끓자 혈액원은 그에 대한 소송과 징계를 거둬들였고 그는 겨우 평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씨의 제보는 혈액 관리 체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헌혈자 신분을 조회해 병력(病歷)을 확인하고 헌혈에 적합하지 않은 혈액을 사전에 제외하는 시스템이 마련됐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내부에서 몇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 불만쯤으로 취급하거나 '당신 일이나 잘하라'고 
질책하기 일쑤였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방송사에 알렸다."

[만물상] 내부 고발
▶정부 기관이나 기업 내부 비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곳 직원이다. 
내부인이 비리를 적극적으로 고발하면 부정부패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도 2002년 부패 신고자를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2011년엔 공익 신고자 보호법을 만들었다. 
보호법은 공익을 위해 내부 비리를 신고한 사람의 인적 사항 공개를 금지한다. 
신고자에게 해고를 비롯한 불이익을 주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공익 신고는 2011년 292건에서 작년 9130건으로 급증했다. 신고자 보상도 2002년 법 도입 이후 266건, 82억원에 이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어느 설비 업체 직원에게 보상금 11억원을 줬다고 그제 발표했다. 역대 가장 많은 신고 보상금이다. 
이 직원은 자기 회사가 한국전력에 납품하면서 원가를 부풀려 280억원을 챙겼다고 신고했었다. 
덕분에 그중 263억원을 국고로 환수했다고 한다. 
정부가 내부 고발을 11억원으로 보답하고도 스무 배 넘는 이득을 얻은 셈이다.

▶우리 사회엔 아직도 내부 고발자를 배신자로 여기는 풍토가 뿌리 깊다. 
직장에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 해고하거나 고소하기 일쑤다. 
정부가 '내부 고발' 대신 '공익 신고'라고 부르며 2011년 법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도 내부 고발의 나쁜 이미지를 씻어 보려는 
뜻이었다. '열 사람이 한 도둑 못 막는다'고 했다. 내부 고발은 도둑을 가장 효율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가 한 단계 더 높은 사회로 올라서려면 내부 고발을 보는 눈부터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