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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오디세이 2015] 당장 압록강 건너가 북한 구호활동 하고 싶다

바람아님 2015. 8. 14. 10:07

[중앙일보] 입력 2015.08.13

[릴레이 기고] 한비야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왕가뭄 들어 수십만명 굶어 죽게 생겼는데
2007년 대북지원 4400억…지금은 100억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본 북한. 강 위를 떠가는 북한 선박 뒤로 신의주 시가가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국과 북한 사이를 무심히 흐르는 압록강은 가뭄으로 강폭이 좁을 대로 좁아져 있었다. 단동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자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압록강 단교 위를 걷고 있자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언제까지 안타까워만 할 건가?’

벌써 몇 번째인가 말이다. 세계일주 중 두만강변 도문에서, 국토종단 중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해안 일주 중 강화도 철산리에서 지금처럼 북한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안타까워한 게. 수 십 년간 반복되는 이런 감정이 이젠 지겹기까지 하다. 그래서 통일에 대해 시큰둥하거나 냉소적인 반응, 당연히 이해하고 깊이 공감한다. 그래도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 위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본다. 멀게만 느껴지는 평화통일을 위해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하나도 없는 걸까?

나는 15년째 국제 구호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그리고 며칠 후 떠날 터키 남부 시리아 난민촌 현장에서 수십만 명의 재난민들에게 물, 식량, 의료, 피난처를 지원하며 보호하고 있다. 전 세계의 긴박한 현장에서 구호 식량과 의약품을 나눠줄 때마다 늘 마음 한편이 아리다.

“지금 북한도 누군가 들어가서 도와야 하는데... 우리 집 앞가림도 못하면서 내가 여기서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건 단지 우리 아버지 고향이 함경도여서가 아니다. 북한은 긴급구호 상황 지표로 볼 때 명백한 구호현장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5세 미만 아이 중 신장 대비 체중 비율이 80%인 어린이가 전체의 10% 이상일 때, 1인당 하루 섭취량이 2,100킬로칼로리 미만일 때 등등을 긴급상황으로 규정하고, 이런 지역에 즉각적이며 조건없는 인도적 지원을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북한은 식량부족률, 영유아 영양실조율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는 가뭄으로 더욱 그렇다. 여기 오기 직전에 듣기로는 북에도 왕가뭄이 들어 2주일 내로 비가 안 오면 1990년대 중반 아사자만 33만여 명을 냈던 ‘고난의 행군’ 때의 식량생산량에도 못 미칠 거라고 했다.

식량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하면 UN 및 공여국 등은 인도적 지원책을 마련하고 즉각 실행에 옮겨야 마땅하다. 그런데 국제사회는 조용하기만 하다. 구호자금과 인력과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다. 북한과 주변 국가의 얽히고설킨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수십만명이 굶어죽게 생겼는데도 말이다.

남 얘기 할 것도 없다. 우리 정부도 정권에 따라 소위 퍼주기와 안 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5년 전 미국에서 인도적 지원학을 공부할 때 깜짝 놀랐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인도적 지원이 가장 크게 좌지우지되는 현장이 바로 북한으로, 이 분야의 대학원생과 학자들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케이스로 한국과 미국 등의 대북 지원정책을 수없이 연구, 발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 우리나라 대북 지원 총액은 약 4천 4백억 원이었는데, 2011년부터는 100억 원대로 내려갔다. 북한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지원금은 무려 3,40배 줄어든 거다. 지난 3년간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일하면서 보니 UN의 대북지원액도 해마다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국제구호 전문가로,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고도 안타깝다. 누군가 북한으로 구호활동을 가야 한다면 내가 기꺼이 가고 싶다. 갈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 압록강을 건너고 싶다. 가서 그동안 세계 재난 현장에서 익힌 경험과 이 뜨거운 열정을 ‘우리 집 사람’ 살리는 데 몽땅 쏟아 붓고 싶다.

우리나라 대북지원 단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거다. 물론 정부는 세금으로 대북협력을 하는 만큼 국민 정서와 합의가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적 이슈와 상관없이 영유아, 임산부 등 북한 취약계층의 생명과 직결되는 도움만큼은 계속해야 한다며 대북협력 민간단체에게 지원금품을 보내는 국민들도 생각보다 많다. 이런 민간단체들은 오랫동안 대북사업을 하며 양쪽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이들을 통해 인도적 지원만이라도 재개한다면 꽁꽁 얼어붙은 서로의 마음을 녹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어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UN 및 국제사회와의 공조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인도적 지원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퍼주기’와 ‘안 주기’를 넘어서 ‘제대로 주기’의 틀을 마련해 가야 한다.

나는 더 이상 먼발치에서 북한을 바라만 보고 싶지 않다. 압록강, 두만강 타령도 싫다. 그래서 두 눈 부릅뜨고 찾아볼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