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베이징 특파원
“고맙다 도널드 트럼프, 덕분에 중국은 황금길을 걷게 됐어.”
미국 대선 유세 기간 동안 중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지만 중국인들은 오히려 웃고 있다.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해 온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지도자 교체는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중국 매체들과 SNS에는 대선 과정에서 나온 각종 추문을 가십성으로 보도하기 바빴다. 민주주의 선거에 대한 부러움보다는 리얼리티 쇼를 구경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개표 당일 중국 지식인층의 SNS는 온통 미 대선으로 뒤덮였다.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됐을 때 중국 매체들도 놀라움을 표현했다. 심지어 당일 주요 뉴스 포털 사이트인 써우후(搜狐)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당선을 전제로 한 기사가 한동안 올라 있기도 했다. 대선 개표가 완료된 후 트럼프에 대한 중국 정부 당국의 공식 입장은 신중했다. 여전히 ‘협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중국인들 사이에서 민주주의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필리핀에서 막말을 일삼는 변덕스러운 괴짜 포퓰리스트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출현한 데 이어 이제 민주주의 국가의 ‘큰형님’ 격인 미국에서 역시 예측 불가능하고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가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자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공민(公民·국민에 해당)이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뽑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직접 투표했으면 연예인이 국가주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중국은 혼란해질 것이고 지금의 강한 중국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중국의 주류 지식인층이 “중국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고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족주의적 논조로 국제 뉴스를 주로 다루는 관영 매체 산하의 환추스바오(環球時報) 등은 미국 대선 과정을 ‘역사상 가장 더러운()’ 선거로 규정하고 “미국이 흔히 말하는 ‘민주’가 이런 것이냐”며 신이 나서 비꼬았다. 미국인들 또한 이번 선거를 혐오한다는 인터뷰도 충실하게 실었다.
최근 한국의 정치 상황도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소재거리다. 국민이 직접 대표를 뽑았지만 어지럽고 국정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국이지만 여기도 투표를 통해 대표를 뽑는 제도가 있다. 요즘이 바로 그 시기로 15일 베이징(北京)의 각 구별로 마련된 1만2000곳의 투표소에서 각 구 단위의 인민대표를 뽑는 투표가 이뤄졌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전국적으로 공민들이 직접 투표로 대표를 뽑는 정치 행위로 기초자치단체 투표와 비슷하다. 이후 상위 단위의 인민대표는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여기서 선출된 대표들은 2017년 2월 열리는 헌법상 최고 의결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다.
그러나 사실상 국가 운영은 당이 주도하고 전인대는 이를 형식적으로 통과시키는 수준이어서 서방국가들은 전인대 대표들을 ‘고무도장’에 비교하곤 한다. 최근 랴오닝(遼寧)성에서는 인민대표를 선출하는 간접선거 과정에서 대규모 금품·뇌물 수수 사실이 드러나 수백 명의 당선이 취소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민주주의에 대해 지식인들과 일반 공민들에게 “선거를 더 확대했다가는 나라가 난장판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됐다.
이처럼 대외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과 그에 대비해 중국의 ‘안정적인’ 현 정치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당분간 정치 개혁이나 민주주의적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안정적’이라고 믿는 체제가 불투명성과 선전, 통제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 알려지고 이 같은 점이 중국 공민들 사이에서 문제점으로 인식되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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