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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사물극장] [2] 무라카미 하루키와 LP판

바람아님 2017. 7. 7. 09:50
조선일보 2017.07.06. 03:10

잃어버린 천국은 결국 우리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잃어버린 천국은 우리 안에서 기쁨, 의미, 행복의 형태로 존재할 테다. 하루해가 저문다. 나에게 온전히 충실했던 하루는 보람되고 아름답다. 사위에 어둠이 깔릴 무렵 의자에 앉아 막스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에 귀를 기울이며 고요한 기쁨에 도취한다. 나는 듣는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8)가 재즈와 팝, 클래식 애호가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10대 때 AM 라디오를 통해 리키 닐슨, 엘비스 프레슬리, 닐 세다카를 듣고, 그 뒤로 비치 보이스, 빌리 조엘, 재즈에 빠진다. 와세다 대학 시절 신주쿠 레코드 가게에서 시급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먹을 것도 안 먹고 적은 용돈을 모아 레코드판을 한 장씩 사 모으고,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 교외 고쿠분지에서 7년 동안이나 재즈 카페를 꾸린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물과 도구는 발명과 혁신을 통해 더 편리하고 기능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한다. 백열전구가 사라지고 LED 등이 그것을 대체하고, 타자기가 사라지고 컴퓨터가 들어왔듯이. CD가 나오자 너도나도 LP판을 고물상에 내다 팔았지만 하루키는 아날로그 레코드판을 사 모은다. "중고 가게에서 내용이 알찬 아날로그 레코드가 너무 싼 가격에 팔리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오 저런, 가엾기도 하지. 내가 사줄게' 하는 마음이 들죠." 하루키는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에 들를 때마다 중고 가게를 순례하며 LP판을 부지런히 사서 LP판을 중심으로 음악을 듣는다.


이 LP판에 대한 과도한 애착의 뿌리는 무엇일까?

첫째, 세상에 없는 멋진 연주자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둘째, 그것을 개인적으로 소장하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점.

셋째, 젊은 시절 가난으로 누리지 못한 데 따르는 보상 심리도 있을 것.

넷째, 과거의 영화(榮華)를 가진 것, 지금은 차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멜랑콜리도 없지 않았을 테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