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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호주 말고 한국대사 가라"…해리스, 한반도에 긴급 투입

바람아님 2018. 4. 26. 08:33
[중앙일보] 입력 2018.04.25 14:59
새로운 주한미국대사로 유력해진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

새로운 주한미국대사로 유력해진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

 
지난 2월 9일 밤 워싱턴 DC의 해군복합단지(네비이 야드) 장군 관저에서 이날 주 호주 미국 대사로 지명된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을 축하하는 소모임이 열렸다. 지인 중 한 명이 해리스 사령관에게 "이런 상황에선 주한 대사로 가는 게 맞지 않나요?"라는 농반진반을 건냈다. 해리스 사령관은 씩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두달 반이 지난 지금, 당시의 말은 현실이 됐다.
 
워싱턴포스트(WP) 등 현지 언론은 24일(현지시간) 미 정부가 주 호주 대사 지명자인 해리스 사령관을 주한대사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지명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같은 안을 건의했고, 트럼프의 최종 재가가 나면 주 호주대사 지명철회→한국 정부에 아그레망 신청→공식 지명의 순으로 진행될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 이날 해리스를 주 호주 대사로 임명하기 위한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 청문회는 돌연 취소됐다. 전날(23일) 밤 미 정부가 청문회 취소를 요청했고, 이를 외교위가 받아들인 것이다.
 
의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

의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

 
호주 정부도 미국으로부터 이 같은 의사를 통보받았음을 시인했다. 줄리 비숍 호주 외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존 설리번 미 국무장관대행으로부터 어제 이 같은 결정을 전달받았다"며 "해리스가 대사로 오는 걸 고대하긴 했지만 미국이 한반도에 중대한 도전적 과제가 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적절한 시기에 미국이 매우 적절한 대사를 대체 임명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호주 정부의 '양보'로 사실상 '해리스 주한대사'는 굳어지는 양상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왼쪽),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오른쪽)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왼쪽),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오른쪽)

 
이에 따라 미국의 한반도 정책 라인은 존 볼턴(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폼페이오(국무부 장관 지명자)-해리스(주한 대사 내정자)의 3각 라인으로 형성됐다. 모두 북핵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대북 원칙주의자다.
 
 해리스를 주한대사로 민 건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였다. 아직 국무장관에 공식 취임하진 않았지만 폼페이오는 약 3주 전부터 주변에 "주한대사는 내가 정할 것"이라며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 왔다고 한다. 한때 거론됐던 월터 샤프·제임스 셔먼 전 주한미군사령관에 대해선 "훌륭한 분들이지만 주한사령관을 지낸 사람이 대사를 하게 되면 한참 후배 뻘이 되는 현직 주한미군 사령관과의 균형이 깨진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새롭게 부상한 게 해리스 사령관. 원칙을 중시하고 군 안팎에서 폭넓게 존경을 받는데다,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하며 미국의 세계전략 및 태평양 전략, 나아가 한·미·일 동맹의 소중함을 숙지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폼페이오는 해리스 사령관에게 조용히 주한대사로 '갈아타기'에 대한 의향을 물었고 본인도 기꺼이 동의했다고 WP는 전했다. 
 
지난해 8월 방한해 외교부를 방문한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 사령관.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나기 전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함께 서 있다.

지난해 8월 방한해 외교부를 방문한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 사령관.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나기 전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함께 서 있다.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을 내주고 백악관에서 상원 인사청문회에 넘긴다는 공식 발표까지 한 상황에서 이를 뒤집는 결례까지 무릅쓰고 해리스를 주한대사로 긴급수혈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해리스를 주한대사로 돌려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는 얘기다. 
 
워싱턴의 여러 관계자들 분석을 종합하면 첫째는 인물난이다. 빅터 차 인사철회 이후 여러 군 출신, 정치인 출신 인사들이 거명됐지만 본인들이 고사하거나, 격변하는 한반도 상황을 다룰 만큼의 실력을 갖춘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 주한대사대리인 마크 내퍼의 임기가 7월까지여서 최대한 인선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7월 한국을 방문한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이 함동참모본부에서 정경두 합참의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국을 방문한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이 함동참모본부에서 정경두 합참의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

 
하지만 가장 핵심은 무엇보다 한반도를 관할하는 미 태평양사령관을 3년 가량 맡으면서 북한 동향 및 유사 시 신속대응에 누구보다 숙달해 있는 최고위급 인사란 점이다. 
해리스 사령관은 미 해군 준위로 복무했던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1956년 태어났다. 부친이 근무하던 일본 요코스카(주일미군 해군 기지) 출생이다. 78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군 조종사 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해군 참모차장, 6함대 사령관, 합참의장 보좌관, 태평양함대사령관 등을 거쳤다. 사막의 방패·폭풍 작전, 아프가니스탄 침공작전, 이라크 전 등 8개의 전쟁과 작전에 참전했고 일본·바레인·이탈리아 등지에서 오랜 해외 근무 경험도 갖췄다. 총 비행시간 4400시간, 그 중 전투비행 400시간을 자랑한다. 부인 브루니 브래드리도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25년 간 복무한 정통 '해군 패밀리'다. 일본 근무 시 만나 결혼했다.
 
하와이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와 함께 한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과 부인 브루니 브래드리(맨 오른쪽). 브래드리도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25년 간 해군에서 복무했다.

하와이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와 함께 한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과 부인 브루니 브래드리(맨 오른쪽). 브래드리도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25년 간 해군에서 복무했다.

 
해리스는 전투 뿐 아니라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행정학), 영국 옥스포드대(국제정치), 미 조지타운대(안보학)의 세 곳에서 석사학위를 따는 등 국제외교에도 두루 정통한 인물로 꼽힌다. 
또한 부친이 해군 항해사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고 진해에서 근무했던 것을 비롯해 한국과의 인연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린 시절 부친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 한국민에 대한 감사함을 배웠다고 스스로 털어놓기도 했다.  
 
해리스 사령관은 2011년 합참의장 보좌관 시절 국무부에 파견돼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해리스 사령관은 2011년 합참의장 보좌관 시절 국무부에 파견돼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해리스는 정책적으로는 '대북, 대중 강경론자'로 꼽힌다. 트럼프-김정은 간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낙관할 수 없다. 미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와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난 눈을 크게 뜨고, 즉 경계하면서 이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은 한반도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북한에 요구할 것"(3월 15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고수한다. 김정은 정권에 대해서도 "김정은과 공산 정권의 지배를 받는 통일된 한반도가 김 위원장의 목표"(2월 14일 하원 군사위 청문회)란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주한미군에 대해선 "미국이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면 김정은은 승리의 춤을 출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해리스 사령관은 뼛속까지 군인일 뿐 무모한 대북 강경론자는 아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 그는 지난해 5월 의회에 나와 군사행동 가능성을 집요하게 캐묻는 의원들에 "우리가 외교·군사 조치를 모두 고려 중인 건 맞지만, 우리는 김정은을 무릎 꿇리는 게 아니다. 그가 이성을 찾게 하고 싶은 것이다"고 답하기도 했다. 또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배치에 대해서도 "사드는 미 정부가 결정한 것도, 한국 정부가 결정한 것도 아니다. 한ㆍ미 동맹이 결정한 것이다”는 말을 내놓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 사령관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과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 사령관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미 국방부 안에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 견줄만한 내공을 갖춘 인물"이란 평가가 많다. 24일(현지시간) WP의 보도가 나온 이후 "현 시기에 주한대사로는 최적임자"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해리스는 중국에 대해선 줄곧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남중국해에 암석과 암초 등을 매립해온 중국을 "'모래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신뢰 결핍 끝판왕'이라 묘사하기도 했다. 이에 중국 언론들은 "어머니 나라(일본)를 편든다"며 불쾌감을 드러내왔다. '해리스 주한대사'에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게 중국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