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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갑자기 울게 만드는 사원..정말 희한한 경험이었다

바람아님 2013. 12. 28. 13:27
[오마이뉴스 김산슬 기자]
   

카이로에서 타임머신을 타는 법

태양의 끄트머리마저 보일락 말락 황량한 카이로의 돌산의 뒤로 숨어들어 갈 무렵, 우리를 태운 미니버스가 멈춰 섰다.

칼리드와 나, 나흘라, 이보 이렇게 넷이 버스에서 내리자 미니버스는 다시 페인트칠이 벗겨진 몸통을 탈탈탈 거리며 복잡한

카이로의 골목 저 편으로 들어갔다. 길 건너편에는 커다란 벽이 세워져 있었는데, 크기와 길이를 보니 단순한 벽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성벽의 일부인 것 같았다.



칼리드와 길을 건너 그 성벽의 안으로 들어갔다. 성문의 입구를 들어설 때,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하고 수염을 기른 앳되 보이는

무슬림 청년 서 너 명이 손에 꾸란과 노트, 필기구 등을 든 채로 이야기를 나누며 성곽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의 학구열 넘치는 청년들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아랍어로 빠르게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흘깃 우리를 쳐다

보고 스쳐갔고, 우리 또한 그들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그들을 스쳐지났다.


이슬라믹 카이로의 깊숙한 거리

짧았던 성문 아래 어둠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눈앞에 방금 전 소음으로 꽉 차있던 곳과 완전히 분리된 곳이 펼쳐졌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방금 지나왔던 성벽 아래서 잠깐의 어둠에 갇혔던 동안 아주 긴 시간을 거슬러 다른 곳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성문을 지나는 동안 황금빛 석양도 완전히 사라지고 하늘은 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혀 포장되어 있지 않은 흙과 진창의 바닥, 우리를 바라보는 낯섦이 가득 담긴 시선, 자전거, 그리고 고수 나물을 잔뜩 얹은

수레를 끄는 당나귀까지. 어둠을 밝힐 가로등과 자동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집집마다 가게마다 걸어 놓은 등불의 희미한

불빛만 여기저기서 반짝거릴 뿐. 그곳은 카이로의 속살 중에서도 가장 깊고 비밀스러운 날 것 그대로의 카이로였다.


▲ 고요한 거리의 풍경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가게의 종류들도 주로 슈퍼나 물담배 가게 등 현지인을 위한 상점들이었다.

 

그 곳의 분위기와 고요와 그 순간 불어왔던 바람은 감히 기록하거나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것이어서, 나는 일찌감치 노트와

카메라 꺼내기를 포기하고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는 데 집중했다. 언젠가 비슷한 바람에 비슷한 냄새가 실려올 때면, 내 몸은

지금 이 순간을 정확하게 떠올리게 해 줄 것이다. 칼리드를 따라 몇 걸음 내딛다 그가 멈추자 우리도 멈추었다. 십 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곳을 걷다 멈춘 곳은 어떤 건물의 입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층으로 된 사원의 입구였다. 단번에 보기에도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사원의 벽에도 마찬가지로 등불이 걸려 있었다. 칼리드는 말했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원이에요. 하지만 아주 오래되고, 또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죠."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가린 채 사원으로 들어갔다. 사원의 내부에는 또 다른 외부가 있었다. 특이하게도 사원의

내부는 천장이 없었다.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진 흰 대리석 바닥 위로는 밤하늘이 보였고 그 사각형 안마당의 테두리를 따라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기둥에 달린 램프에서는 은은한 주황 불빛이 일렁거렸다. 트인 천장 때문에 내부에 있다는

느낌을 줄 것 같지 않았던 생각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안에 들어서자마자 온몸을 압도하는 침묵이 주변을 휘감았다.


▲ 사원의 내부보다시피 천장이 없이 가운데 안마당이 널찍하게 트여 있다.

때마침 사원에는 우리 외엔 아무도 없었고, 사람의 발걸음 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사원으로 들어서자마자

바깥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소리와 같은 일상의 잡다한 소리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

을 때 시간을 옛날로 거슬러 올라온 느낌이었다면, 외부의 모든 소리로부터 완벽히 차단된 사원의 내부는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듯했다. 완벽한 고요. 공기마저 바깥과 달랐다. 우리를 스치던 바람은 온 데 간 데 없이, 시간이 멈춘 마냥 바람도, 공기도 멈추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그곳을 걸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이었다. 잔잔한 평온과 무엇에서부터인지 모를 벅참이

나를 덮쳤다.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 했던, 세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평온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노트를 꺼냈다. 글로는 어떤 것도 묘사할 수 없었다. 다만 지금 나의 떨림과 벅참을 담아 사원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의 정교함이나

일치성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훗날 다시 그 그림을 꺼내본다고 해도 내게는 그 설렘과 벅참이 고스란히 느껴질 것이기에.

노트를 덮었다. 다시 일어나 조용히 그곳을 음미하며 걸었다. 그림을 그리던 내 모습을 찍던 이보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나흘라는 내 옆에 앉아있었지만 우리는 그저 곁에 앉은 것일 뿐, 같이 앉은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이 고요를 깨고 싶지

않아 했고, 각자의 세상에서 이 경건함의 고요를 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이 말했다.

'소피, 정말 아름답지 않아?'

'응, 아주 행복하고, 아주 신비한 느낌이야. 차마 아름답다는 말로 말할 수 없는. 너도 느끼고 있는 거지?'

우리는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행복을 담아 서로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이

치솟았다. 슬픔도 아니었다. 기쁨도 아니었다. 내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한데 엉켜 밖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자꾸만 줄줄 흘러내렸다.

그렇게 울어대는 나 자신에 대한 당황스러움도, 부끄러워할 시간도 없이 어느새 나는 사력을 다해 울고 있었다.

한참이 지났을까, 어느덧 마음은 다시 차분해졌고, 평온이 찾아왔다. 아직도 무언가를 담지 않은 내면의 방이 무수히 많은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기분.


▲ 사원의 기도실 내부가운데 중정을 둘러싼 기둥 안쪽으로는 꽤나 넓은 예배실이 이어져 있었다.

왜 그때 그곳에서 그러한 경험을 했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나는 무슬림도 아니었고, 신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사실 크리스천인 내가 이슬람 사원에서 이러한 경험을 한 것이 다소 엉뚱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그 특별함은

어느 특정 종교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순간, 그곳에서 우리는 지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를 본의 아니게 살짝 엿보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곳의 하얀 대리석 바닥과 흰 기둥들에 달린 램프들이 아른거린다. 그리고 절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그때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아직도 꿈만 같다.

쉽게 생각하고, 감사하며 사는 이집트 사람들

그 사원을 나와 칼리드를 따라 좁은 골목을 계속 걸었다. 그는 틈틈이 두세 개의 사원들을 우리에게 더 보여주었고, 골목 안

어떤 가게의 문 옆에 그대로 남아 있는 오래된 아랍식 우물의 흔적을 보여주었고, 종교 대학을 보여주었다.

그가 가진 이집트와 그곳의 건축물들에 대한 방대한 상식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마치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에게서 듣는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했다. 그의 머릿속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상식들은 그가 가진 애국심으로

아름답게 세공된 뒤 건축에 대한 사랑으로 덧입혀 저 보석처럼 쏟아져 나왔고, 그 보석 같은 이야기들은 길을 걷는 내내 우리의

귀를 홀렸다. 그의 이야기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애정 없이 그저 일을 하는 일부 가이드에게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아주 큰

사랑이 흠뻑 묻어 있었다.

동행하는 내내 제일 앞에서 우리를 안내하면서도 혹시 다치지 않을까 염려되어 일분 동안에도 몇 번을 돌아보던 칼리드와

새로운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자 이제 곧 칸엘칼릴리가 나와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리드가 순식간에 중심을 잃은 채 넘어지고 말았다. 붙잡을 틈도, 놀랄 틈도 없이 그는 하필이면

자전거와 리어카 바퀴들이 수백 번 지나며 만들었을 길 중간의 어떤 흙탕물 가득한 웅덩이에 미끄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놀라는 우리를 되레 안심 시키기 위해 그는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옷이 젖은 것뿐이에요. 알 함두릴라."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그의 옷은 단순하게 '젖은' 정도가 아니었다. 깔끔했던 그의 옷 여기저기에 진흙이 흘러내려 엉망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웅덩이 바로 옆에 위치한 철물점에 계시던 아저씨가 어디선가

주둥이가 기다란 주전자에 물을 가득 들고 오셨다. 휴지는 없고, 어차피 젖은 옷, 깨끗하게 흙이라도 털어 내라는 얘기다.

칼리드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받아 흙을 털어냈고, 물이 모자라다며 한 바가지만 더 달라고 아저씨에게 요청했다. "아는 사이

인가 봐?"라고 물었더니 칼리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니."

칼리드는 철물점 아저씨를 모른다고 했다. 아저씨도 그를 몰랐다. 다만 자신의 가게 앞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동행하다 넘어진

청년을 보았을 뿐이고, 아저씨는 그를 도운 것뿐이었다.


무엇인가로 가득 차있는 가게와 할아버지.

 

대학교 내에서 비(非)무슬림인데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언어적 성추행을 당한 뒤 뻔뻔하게 도망치려는 가해자

현지 남학생을 붙잡으려 실랑이하던 나와 내 친구를 그저 남 보듯이 구경만 하고 서있던 요르단 사람들이 생각났다. 한 사람이

전부를 대표할 순 없지만, 저마다의 민족성이 있기 마련인데, 이집트 사람들은 요르단과 같은 아랍 사람이지만 유난히 깊은 정을

가진 이들이었다. 하루살이 만남에도 마음을 주고 이별에 아파서 울던, 작은 무엇이라도 그들의 마음과 함께 내 손에 꼭

쥐여주던 이들. 좋은 이집션은 곧 나에게 있어 '가족'이었다.

선선한 이집트의 겨울 저녁. 뜻하지 않은 일로 온통 옷을 버리고서도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나의

잘못이든, 천재지변이든, 언제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풀어보려 애쓰던, 혹은 그 상황에 대한 불만을 늘어놨던 나에

비하면 그의 대처는 아주 유연하고 어른스러웠다.

알 함두릴라. '신에게 찬미를'이라는 뜻이다. 무슬림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쓰는 말, 알 함 두릴라. 그리고 '신께서 원하신다

면'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인 샤알라'까지. 그 두 마디는 어릴 적부터 함께 해 온 그들 삶의 일부였고, 그래서 곧 그들의 가치관에

도 큰 영향을 끼쳤다.

누군가는 아랍인들이 자기 의지라곤 없는 게으르고 열정 없는 운명론자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언제나 주어진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고 수긍할 줄 알았다.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것이 신의 뜻이고 계획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 무슬림들의 금요일 예배금요일 아침, 좁은 골목 인도 앞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다.

 

반대로 나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고 애쓰며 살았다. 그리고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대했

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그것을 스스로에게 납득 시키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때의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

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내 손을 떠난 뒤 혹여 그 결과가 원하는 것과 다르다 해도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갈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짧고 길었던 여행과 만남을 통해, 세상에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일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그리고 모든 일은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며 더디게 배워 나갔다. 나쁜 일이 닥쳐도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감사

할 줄 알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그저 그 또한 인생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을 줄 아는 '알 함두릴라'와 '인 샤알라'로

돌아가는 무슬림들의 삶.

2년이라는 시간을 그들과 함께 하며, 어느덧 내 입에도 찰싹 붙어 버린 마법의 주문 같은 감사와 순종을 담은 그 두 마디가

어쩌면 이집트인들이 그들의 고된 삶 속에서도 우리보다 더 잘 웃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점점 골목이 시끄러워져 온다. 기념품 상점의 수도 눈에 띄게 늘어난다.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와 손짓들의 횟수가 잦아진다.

드디어 아프리카 최대의 시장, 칸엘칼릴리의 입구로 온 것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모스크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었기로

유명한 알 아즈하르 사원도 보인다. 해질녘 성벽을 지나 꼬불꼬불 길을 걸어 어떻게 이어졌는지도 모르게 장사꾼들로 붐비는

이집트를 다시 맞이하자니, 지난 두 시간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이틀간 여행을 하다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또 다른 모습의

'진짜' 카이로로 돌아온 것이다.

"오늘, 당신들을 만나서 너무나 반가웠어요. 당신들이 떠나기 전에 우리가 한번 더 볼 수 있을까요?"

"신께서 원하신다면요, 인 샤알라. 당신을 만난 건 우리에게도 행운이었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곳들이에요.

칼리드, 고마워요."

"인 샤알라. 이집트를 사랑해줘서, 내가 더 고마워요. 피라미드에 있는 사기꾼들만 보고 이집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아 줘서.

그리고 소피, 당신의 심장은 정말 메이드 인 이집트인가 봐요. 여러분 덕분에 너무나 뿌듯하고 행복했던 하루였어요.

신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길."

우리는 마주 웃었다. 우리 모두는 안다. 지금 칼리드가 건넨 애프터 신청이 진심이라는 것을. 하지만 또한 우리 모두는 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인 샤알라로 돌아가는 '아랍'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신이 원하면 우리는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만나지 못해도

그 또한 신의 뜻이기에 그렇게 흘러가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 만남이 마지막이 될 확률이 더욱 높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와의 인연을 간직하고 싶어, 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택시를 직접 잡아 기사에게 흥정까지 해놓고서는 "내 친구이고 이집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니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잊지

않는다. 사람 좋아 보이는 택시 아저씨는 "메쉬메쉬(알았어요 알았어)"하며 문을 얼른 닫으라며 손사래를 친다.

택시가 출발하자, 우리는 몸을 뒤로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너의 도전에 행운을 빌어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칼리드를 만나지 못했다. 그를 만나려 계획을 바꾸기엔, 나를 기다리는 오랜 이집트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주었고, 그는 나의 두번째 이집트 여행에서 하나의 큰 기억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 돌아온 뒤 9월의 어느 날, 그에게서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Your sentence on your id card changed my life. So I decided to travel next week to Saudi arabia for new job there. I will try to know. Thanks ghada,"

( 명함에 있던 문장이 내 삶을 바꿨어. 난 다음 주에 새로운 일을 찾아 사우디아라비아로 갈 거야. 무엇이 있는지, 가보기 전에는 모르니까. 고마워 소피.)

내용인즉,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던 그에게 내 명함에 새겨진 좌우명(You will never know until you try, 매 순간 후회 없이)이

눈에 띄었고, 그는 평생을 머물던 이집트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우선은 사우디에서 직업

을 찾아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문장은 칼리드에게 우리가 함께 했던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오랜 여행과 경험으로 인한 삶의 지혜가 묻어

나던 이보의 말들, 할머니라는 별명에 걸맞게 속이 깊고 현명한 나흘라, 그리고 자신이 보여준 숨겨진 카이로를 보고서 놀라워하

던 우리를 보며 느꼈던 이집트 건축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까지. 세 시간 남짓했던 찰나의 순간이 서로의 인생에 큰 발자국을

남겼던 것이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 나를 지탱해준 그 좌우명이, 첫사랑으로 인해 처음 배운 그 깨달음이, 누군가의 삶을

또 한 걸음 내딛게 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그의 앞길에, 처음 떠나는 그 길 위에 행운이 있기를. 좋은 인연을 만나고, 다신 없을 순간과 마주하며 인생이 알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기를. 그 속에서 작은 것으로 감사하는 행복을 맛보기를. 떠난 그 발걸음을 후회하지 않기를. 그리고 힘들 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다는 걸 잊지 말기를.

그리고 그의 메시지는 한국에 돌아온 뒤 미래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다 헤매다 결국 뙤약볕 아래 풀처럼 무기력함에 시들시들

쳐져 있던 내게 또 다른 힘으로 돌아왔다. 감사함과 응원을 담아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Good luck to you. (네게 행운을 빌어).

여행 팁: 칼리드가 우리를 데려간 사원의 이름은 'Masjed alhakm be ammr allah'이라고 한다. 칸엘칼리리 시장과 인접한 지역

이지만 워낙 조밀한 골목들이 밀집해 있어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또한 사원에 들어갈 때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안된다. 긴 바지나 긴 치마를 착용하도록 하고 머리는 스카프나 손수건 따위로 가리고 들어가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관광화

되지 않은 일반 사원에 들어갈 때에는 더욱 복장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