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9.11.06. 03:02
한국에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세계가 주목하는 럭비 월드컵이 지난 몇 주 동안 일본에서 열렸다. 2일 치러진 결승전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예상을 뒤엎고 잉글랜드를 이겼다. 남아공은 1995년, 2007년, 2019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신기하게도 12년마다 우승을 한 나라가 되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지긋지긋한 인종차별의 악몽을 떨쳐낸 것에 대한 하늘의 축복일까. 우승에는 행운도 따랐다.
남아공 대표팀 주장인 시야 콜리시는 우승 직후 국민들을 단합시키는 게 선수단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아공 국민들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었다. 흑인 최초로 럭비대표팀 주장이 된 콜리시가 동료들과 더불어 이뤄낸 성취였다. 그러고도 그는 한없이 겸손했다.
예전 같으면 흑인이 주장을 맡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남아공에서 럭비는 백인들의 스포츠였다. 그래서 흑인들은 럭비를 인종차별과 동일시하고 멀리했다. 넬슨 만델라가 1994년 대통령이 되었을 때, 흑인들로부터 ‘스프링복스(영양들)’라는 럭비대표팀 명칭을 바꾸라는 압력을 받은 건 그래서였다. 그러나 그는 스프링복스라는 이름을 그대로 두고 백인이 대다수인 럭비 대표팀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과거야 어쨌든 럭비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백인들도 자신이 품어야 하는 국민들이었다. 복싱과 육상을 비롯한 스포츠를 두루 좋아했던 만델라는 스포츠를 승패가 아니라 화합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는 자신을 27년간이나 감옥에 가둔 백인 집단을 그렇게 용서했다.
백인 감독인 래지 이래즈머스가 흑인인 콜리시에게 주장을 맡긴 것도 만델라 대통령이 보여준 화합의 선례를 따른 것이었다. 백인 감독에 흑인 주장으로 구성된 대표팀은 월드컵 우승을 통해 인종차별의 상처를 상징적으로 치유하고 엄청난 실업률과 범죄, 갈등과 반목에 시달리는 5700만 남아공 국민을 하나로 묶는 데 성공했다. 스포츠가 가진 놀라운 치유력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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