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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世說新語] [556] 패위회목 (佩韋晦木)

바람아님 2020. 1. 31. 09:55
조선일보 2020.01.30. 03:17 2020.01.30. 03:1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주자가 고정서원(考亭書院)에서 쓴 두 구절이다. "무두질한 가죽 참은 부친 훈계를 따름이요, 나무가 뿌리를 감춤은 스승이 전한 삼감일세(佩韋遵考訓, 晦木謹師傳)." 시 속의 패위(佩韋)와 회목(晦木)은 출전이 있다.

주자의 부친 주송(朱松)은 호가 위재(韋齋)다. 위(韋)는 무두질한 소가죽이다. 주송은 조급한 성질이 도를 해친다며 이 말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예전 성정이 조급한 사람은 몸에 무두질한 가죽을 차고 다녀 자신을 경계하곤 했다. 조급한 성질을 무두질해 결을 뉘어야 비로소 큰 공부를 할 수가 있다.


회목은 뿌리를 감춘 나무다. 재능을 안으로 갈무리해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쓴다. 스승 유자휘(劉子翬)가 주자를 위해 써준 '자주희축사(字朱熹祝詞)'에서 말했다. "나무는 뿌리에 감춰야 봄에 잎이 활짝 펴고, 사람은 몸에 숨겨야 정신이 안에서 살찐다(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 뿌리에 양분을 잘 간직해둔 나무라야 새봄에 잎이 무성하고 꽃을 활짝 피운다. 주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 자신의 호를 회암(晦庵) 또는 회옹(晦翁)이라 했다. 자를 원회(元晦)나 중회(仲晦)로 쓴 것도 여기서 나왔다.


패위와 회목은 누그러뜨리고 간직하는 마음이다. 품은 재능이 하늘을 찔러도 직수굿이 눌러 가라앉힌다. 나서고 싶고 뽐내고 싶어도 갈무리해 감춘다. 여기에 무한한 여운이 있다. 그러다가 봄을 맞아 일제히 움이 터 나오면 그 기세는 누구도 못 막는다.

홍직필(洪直弼·1776~1852)은 '을유원일(乙酉元日)' 시에서 새해의 다짐을 이렇게 썼다. "오늘 아침 쉰 살을 맞고서 보니, 뜬 인생 지는 나이 애석도 하다. 이내 몸 평소 행함 편안하거니, 만사를 창령(蒼靈)에게 내맡겨야지. 회목은 남몰래 덕을 펴내고, 찬 매화는 저절로 향기가 있네. 정신을 집중해서 충화(沖和)를 모아, 깨끗한 맘 성성하게 일깨우리라(五十今朝是, 浮生惜暮齡. 一身安素履, 萬事任蒼靈. 晦木潛敷德, 寒梅自有馨. 凝神會冲和, 虛室喚惺惺)." 시 속의 창령은 봄을 관장하는 신이다. 허실(虛室) 즉 빈방은 맑고 욕심 없는 마음을 뜻한다. 빛은 감추고 마음을 깨우자.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