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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70]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뇌

바람아님 2014. 2. 4. 10:28

(출처-조선일보 2014.02.04.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 사진1985년 일이다. 당시 독일 총리 헬무트 콜 초대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비트부르크시(市)에 있는 작은 군인묘지를 방문한다. 2차 대전 종전 40년을 기념하는 추모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평범한'군인들 사이에 49명의 나치 친위대원(SS) 역시 비트부르크에 묻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세계 여론에선 당연히 난리가 났고 레이건 대통령은 묘지를 단 8분 방문한 후 근처 유대인 수용소 역시 방문하는 걸로 문제를 '해결해야'했다.

A급 전쟁 범죄자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가 방문한다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 정서, 여론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괴물이며 미래 히틀러다. 그리고 우리는 믿는다. 전 세계인들이 우리에 동의한다고. 그러기에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야스쿠니 신사 관련 질문을 받은 아베는 '망신'당했으며, 전 세계 여론 모두 아베를 괴물 취급한다고.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건 우리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베를 올해 다보스 포럼 최고의 인물로 뽑았으며, 
미국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는 도리어 "너무나 과거에 집착한다"며 한국과 중국에 책임을 묻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베는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아베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서양인이 보는 아베와도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왜 그런 걸까?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성향이 있다. 
직접 보고 듣는 그 자체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돼 있기에,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엔 언제나 과거 기억과 미래 추론 역시 포함돼 있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에겐 뼈아픈 일제강점기 시대의 경험이 함께 존재한다. 
부모님·할머니·할아버지 일이기에, 우리 자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양인들에게 과거 일본 만행은 '타인의 아픔'일 뿐이다.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일본은 '난징대학살' '731부대' '간토(關東) 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아닌 '소니' 
'닌텐도' '아니메'이기에 언제나 '세련되고 최첨단'이라는 이미지가 붙어 있는 것이다.

아베 신조(왼쪽에서 둘째) 일본 총리가 지난해 12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아베 신조(왼쪽에서 둘째) 일본 총리가 지난해 12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AP

대화를 거부하며 '2+2=4'라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세련된 행동과 말로 다보스 포럼에서 적절히 '2+2=5'라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게 오늘날 세상이다.

당연히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그 자체가 어리석음의 첫 단계일 수도 있다. 

물론 먼 훗날 역사는 결국 '진실'에 한 표 던질 수 있겠다. 

하지만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먼 훗날엔 우리 모두 어차피 다 죽는다. 

미래 역사와 철학은 우리가 지금 걱정할 필요 없다. 

지금 중요한 건 현실이고, 현실은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자가 결국 주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