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房/自作詩와 에세이

목계장터

바람아님 2013. 1. 6. 08:06

 목계장터 / 시: 신경림

 

목계장터 / 시: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충주고등학교 도전 골든 밸 문제(2010년 8월 22일) 을 보고

“목계장터”를 배경으로 떠돌이 장사꾼들의 삶과 애환을 토속적 언어로 담담하게 그려낸 시다.

                            

 

남한강은 상류의 가흥창, 목계, 충주, 청풍, 매포, 영월 등에서 거둔 세곡(稅穀)이 한성으로 올라가는 수운이 이루어지던 강이다. 경제 규모가 보잘 것 없던 시절에는 물물교환 형식의 상거래에 그쳤지만 조선 후기에 인구가 늘고 상거래가 늘어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상설시장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따라 목계나루는 남한강안의 내항으로 크게 발달하였다. 목계 위쪽의 남한강 상류는 봄가을의 갈수기에 수심이 얕아 수백 섬을 싣는 큰 배(장삿배)가 운행할 수 없었던 반면, 목계나루에는 수십 척이 선착할 수 있는 넓고 깊은 강과 백사장이 있었던 것이다.

 

목계나루는 영월과 제천 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고 충북, 강원, 경북 등 중부 내륙지방 육로 중심지였다. 또 서울과 가까워 한성의 문물을 빨리 받아들인 지역이라 남한강 수운 물류교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목계의 옛 이름이 ‘전국에서 다섯째 안에 드는 포구’라는 뜻의 오목계(五牧溪)였던 이유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목계는 과거에 세미(稅米)를 운반하던 가흥창(충북 중원군 가금면 가흥리 남한강변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창고)을 끼고 내륙항으로 발전했다. 당시에는 충청도는 물론 경상도 북부 지방의 세곡까지 받았으므로 가흥과 목계 두 마을에는 큰 상가를 형성하여 충주에 버금가는 성시(盛市)를 이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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