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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213] 네덜란드 왕실

바람아님 2014. 7. 23. 10:13

(출처-조선일보 2013.05.01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네덜란드는 매우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6세기만 해도 이 땅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로서 17개의 주(province)로 나뉘어 있었다. 
종교의 자유와 정치적 자치를 위협받는다고 느낀 이 지방 사람들이 독립전쟁을 일으켜 북부 7개 주는 
독립을 쟁취했고, 남부 10개 주는 스페인 영토로 계속 잔류했다. 신생 독립국은 명망 있는 가문의 
인물을 모셔와 왕국을 만들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아 공화국 체제로 출범했다. 국제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은 것은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네덜란드는 매우 늦은 시기인 17세기에
비로소 등장한 후발 국가였다.

독립전쟁 당시부터 오라녀(Oranje· 오렌지 혹은 오랑주의 네덜란드식 발음) 가문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원래 이 이름은 프랑스 남부 지방에 있는 오랑주 공국에서 유래했다. 복잡한 혼인 및 계승의 
결과 오랑주 공이라는 타이틀은 독일의 나사우 지방 통치자인 르네에게 갔다가 그의 사후 조카인 빌럼에게 돌아갔다. 
'침묵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빌럼은 네덜란드 독립운동을 지휘하다 암살당한 후 네덜란드의 국부(國父)로 추앙받았다. 
그의 후손들 역시 역사적으로 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무엇보다 일반 민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네덜란드의 국제(國制)가 바뀐 것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다. 전쟁의 와중에서 자유주의 개혁을 추구하던 소위 '애국파' 세력이 
권력을 쟁취했다. 그러나 곧 나폴레옹이 이 나라를 정복한 후 자기 동생인 루이 나폴레옹을 국왕으로 앉혔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외국 지배자인 루이 나폴레옹은 실제로 네덜란드의 이해를 옹호하고 민주적인 개혁을 밀어붙였다. 
나폴레옹 황제는 이상한 행태를 보이는 동생을 국왕직에서 '파면'하고 이 나라를 아예 프랑스 영토로 병합해 버렸다. 
1813년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하자 네덜란드는 독립을 선언한 후 오라녀 가문의 빌럼을 국왕으로 선언했다. 
말하자면 이 나라는 혁명을 거쳐 공화정에서 왕정으로 변신한 이례적인 역사 경험을 한 것이다. 
네덜란드 왕실은 늘 자유의 수호자 역할을 해 왔고, 네덜란드 국민은 오렌지색 깃발을 흔들며 열광적 지지를 보낸다. 
이 나라에 다시 빌럼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국왕이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