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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10] 발가벗긴 DNA

바람아님 2014. 10. 6. 20:53

(출처-조선일보 2013.04.2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다윈은 몰랐다. 무엇이 자식으로 하여금 부모를 빼닮도록 만드는지. 
다윈의 정원에는 서양 사람들은 꽃이 용의 입처럼 열린다 하여 스냅드래건(snapadragon)이라 부르고,
동양에서는 금붕어 입을 닮았다 하여 금어초(金魚草)라 부르는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이 식물은 붉은 꽃과 흰 꽃을 교배하면 분홍 꽃을 피운다. 
예전에는 집마다 참 많이 키웠던 분꽃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 
멘델의 유전법칙에 따르면 붉은색이 흰색보다 우성일 경우 붉은 꽃과 흰 꽃의 교배 첫 세대는 모두 
붉은 꽃을 피우는 법이건만 이들은 그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은 다윈과 동시대 사람이었다. 
오스트리아 수도사였던 그는 완두콩 교배 실험을 통해 나타난 다양한 표현 형질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유전물질은 입자(particle)로 되어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멘델은 이 결과를 1866년 논문 두 편으로 발표했고 그 논문집은 다윈의 서가에도 꽂혔지만 
다윈은 끝내 그 논문들을 읽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멘델의 우성 법칙을 따르지 않는 이른바 '불완전 우성'의 예인 금어초를 관찰한 다윈은 결국 유전물질은 
물감처럼 섞인다고 생각했다. 붉은 물감과 흰 물감을 섞으면 분홍색이 되는 것처럼.

그 후 1869년 스위스 출신의 생리화학자 프리드리히 미셔(Friedrich Miescher)가 백혈구의 핵으로부터 DNA와 관련 단백질의 
결합체인 '뉴클레인(nuclein)'을 추출해내는 데 성공하면서 유전물질은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DNA의 
화학 구조가 밝혀진 것은 이로부터 84년이 흐른 후인 1953년이었다. 
오는 4월 25일은 미국의 유전학자 제임스 왓슨과 영국의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힌 논문이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지 60년 되는 날이다. 20세기 생명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 회갑을 맞는다.

컴퓨터 자판을 영어로 바꾸지 않은 채 'DNA'를 입력하면 모니터에 '새롭게 돋아나는 싹'이라는 뜻의 우리말 '움'이 나타난다. 
이번 세기 동안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바이오 산업의 움은 바로 DNA에서 돋아난다. 
DNA는 이제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다.